정통성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이단사이비단체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생존양식을 가지고 활동한다. 특히 자신들의 이단성이나 사이비성이 심각하게 노출될 경우 유사한 대응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생존을 위한 이들의 대응전략이 대부분 반사회적이거나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비상식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의 구원파 그리고 청소년과 배우자의 가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을 때의 신천지처럼,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하나님의교회나 신천지처럼 언론에 긍정적인 노출을 시도하거나 유관 언론을 이용해 홍보하기도 한다. 때로는 만민중앙교회, JMS, 그리고 통일교처럼 무력을 사용하기도 하고, IYF와 하나님의교회처럼 법적인 위협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또는 신도들을 동원한 대규모 시위로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집요하고 강압적인 이단사이비단체들의 대응전략은 교회와 사회의 침묵을 끌어내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들이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사회와 교회가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때로는 이들의 이러한 생존전략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단사이비단체들의 폭력적인 대응은 사회와 교회의 염려를 낳고, 법적 제재를 초래한다. 그리고 사회적 역기능을 하는 사이비종교라는 낙인이 찍힌다. 건전한 종교는 교리만큼이나 활동방식도 건강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상식과 배려에 기초한다. 자신의 교리를 근거로, 비상식적인 활동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잘못된 선민의식을 배경으로, 반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거나 이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자기 집단과 교리에 우선권을 두고, 타인의 행복을 파괴할 수도 없다. 결코 종교를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가정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미국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의 기념관 입구에는 “폭력과 비폭력이 문제가 아니라, 비폭력이 아니면 우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적혀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비폭력적인 삶은 본질이고 운명이다. 그렇기에 이단사이비단체들의 반사회적 폭력적 생존양식은 그들의 정체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어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단사이비에게 대응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도 반사회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단대처의 최종 목표는 ‘정죄’와 ‘분리’가 아니라, 온전한 피해의 ‘치유’와 ‘회복’인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설령 이단의 얄팍한 노림수에 넘어가줄지언정,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인 ‘사랑’과 ‘소망’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단사이비단체들은 ‘반사회적’이고 ‘비상식적인’ 생존양식을 가지고 대응하지만, 우리는 ‘성경적’이고 ‘친사회적’인 대응양식을 견지해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