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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은 다른가?
이상구 박사의 안식교 교리 비판
현대종교 | 이상구 박사
2022년 11월 22일 08시 43분 입력

이상구 박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의사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뉴스타트, 엔돌핀 등 건강세미나로 이름을 알렸다. 1982년 미국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에 입교했고, 구원론, 조사심판 등의 교리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2018년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공개적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현재 이상구 박사는 뉴스타트센터를 운영하며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제거해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편집자 주]

안식교 신도들이 아직도 안식일 준수를 주장하는 이유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완전케 하시려 오셨다고 말씀하신 참 뜻을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마5:17). 만약 이 둘 사이에 전혀 다른 점이 없이 동일한 것이라면 안식일 교회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 있다.

천국이 아닌, 이 세상의 법은 죄를 막기 위하여 존재한다. 땅에는 죄가 있기 때문이다. 죄를 막는 방법, 곧 죄인이 죄를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또 죄의 결과도 모두 사망이라는 형벌이다(롬6:23). 그러므로 땅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롬8:4)이며 죽이는 법(고후3:6~7), 곧 모세의 계명(율법)이다. 돌에 기록한 의문의 율법(고후3:7)이다. 성령의 법(롬8:2)이 아니었고 완전한 하늘의 법, 곧 최고의 법(약2:8)이 아니었다.

하늘의 법은 죄를 막는 법이 아니다. 죄가 없는 곳에 죄를 막는 법은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죄가 없는 하늘의 법은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한 법이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요1:1~2) 하나님 자신이신 ‘사랑’(요일4:8, 16)이다. 이 태초의 법, 곧 사랑은 최고의 법(약2;8), 완전한 법(약1:25)이며 성령의 생명의 법이다.

이 법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법(약1:25)이며 천국의 천사들이 지키는 법, 곧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사랑의 법’이다. 이 사랑의 법이야말로 최고의 율법, 곧 완전한 율법이다. 이 때문에 죄가 들어오고 난 이후의 모세의 율법은 모두 불완전하며 최고의 법이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그 행위와는 상관없이 본성적으로는 죄인이다. 이 때문에 죽이는 모세의 율법대로는 인간은 다 죽어야 한다. 아무리 율법을 행하더라도 그들의 본성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그런 본성적인 죄인이 실제 행위로 간음을 범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본성(본능)적으로 음욕을 품기 때문에 본성적인 죄인이 율법을 행하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죄인, 곧 죽은 자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하늘의 법(사랑)을 지키시어 죄인이 죽을 죽음을 자기가 대신 죽어주심(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하늘의 법’대로 죄인들에게 사랑(은혜)을 행하시는 길밖에는 없다. 그래서 죽은 자(죄인들)를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자기의 소유로 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 하늘의 법, 곧 사랑의 법을 주시는 것이다.

악인과 선인에게,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등하게 사랑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구원받은 자도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하여 주시겠다는 언약, 곧 새 언약(새 계명)을 주시는 것이다. 죄인이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재창조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길밖에는 없다. 창조는 오직 창조주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완전하라”(마5:48)는 계명은 명령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재창조를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바로 이 재창조의 약속을 ‘새 계명’(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은 그야말로 땅의 흙으로 만들어진 죄의 몸을 가진 거룩하지 않은 죄인이다. 이런 천한(낮은) 몸을 가진 죄인을 하늘의 몸, 곧 천사와 동등(눅20:36)한 영적인 몸(고전15:44~45), 영광의 몸(빌3:21)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어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을 명령으로 오해하여 이스마엘과 같은 이단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명”과 “모세의 계명”을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불완전한 땅의 계명과 완전한 하늘의 계명을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여 유대교와 안식일 교회같은 율법주의라는 이단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고의 법, 완전한 하늘의 계명이 불완전했던 모세의 계명을 십자가에서 완전케 하신 것임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일부 개신교회에서도 날짜만 달라진 안식일(주일) 준수를 주장하는 것도 동일한 율법적 이유라면 날짜와는 상관없이 이단인 것이다. 날짜가 이단 여부를 결정한다기보다는 날짜만 따진다면 토요일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날짜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땅의 법과 하늘의 법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땅의 법은 시내산(지금의 예루살렘)(갈4:24~25)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옛 언약(계명), 하늘의 법은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 곧 사랑이다. 불완전했고 이루어지지 않았던 땅의 율법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지고 완성된 것이 하늘의 법, 곧 사랑이다(롬13:8~10).

바울은 모세의 율법이 완성되어 끝에 가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였다. 그렇다. 모세의 계명의 끝은 ‘하나님의 계명’이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옛 계명’이 완전케 되어가면서 그 끝에 도달하면 그리스도의 ‘새 계명’이 되기 때문에 이 두 계명은 완성도의 차이일 뿐 서로 본질은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고 바울은 기록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롬10:4)
바로 이런 이유로 사도 요한이 분명히 새 계명을 준다고 말하면서도 옛 개명과 새 계명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했던 것이다(요일2:7~8)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죄가 없는 곳, 하나님의 최고의 법, 곧 완전한 사랑의 법이 있는 천국에는 본래 모세의 율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완악하여졌기 때문에(마19:8) 하늘의 수준을 낮추어서 본래 하늘의 법보다 낮은 법을 천사들로(행7:31, 53; 갈3:19) 새로 제정하게 하시어 모세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주신 불완전한 모세의 율법(갈3:19)은 십자가를 통하여 완전한 하나님(그리스도)의 계명이 드러난 이후에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하나님의 계명(마5:17), 사랑의 법, 곧 최고의 법(약2:8)으로 승격시키신 후에는 모세의 율법은 본래의 하나님의 계명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이기 때문에 언약의 돌판(신9:9)에 기록하신 모세의 계명은 약속하신 자손(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유효했던 것이다(갈3:19).

그리스도께서도, 사도들도 ‘모세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마15:3; 고전7:19)’, ‘나의 계명(요14:15, 21)’, ‘그리스도의 법(갈6:2)’이라고 표현하면서 모세의 계명(율법)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특히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서는 모세의 율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할례마저도 십자가 후에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 곧 사랑(최고의 법)이 중요하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죄인들은 본성적으로, ‘정상적으로’ 남이 가진 좋은 것을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은 마음, 곧 탐심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이 탐심 때문에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여자가 하나님의 지식을 탐하고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탐한 결과 범죄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죽은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본성적인 죄인이 되어버려서 이미 사망이라는 형벌 속에 가두어져 있는 ‘죽은 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법, 곧 사랑의 법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이 참담한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셔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본성적으로 죄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죄의 본성을 유전 받은 죄의 몸(혈과 육)으로는, 죄의 본성으로는 하늘의 본성을 나타내는 율법을 지킬 수 없고 겉으로만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율법의 행위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으므로 죄의 본성에는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의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은 하늘의 법, 최고의 법, 곧 사랑의 법으로 그들을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로 이미 창세 전에 결심(예정)하셨다(엡1:4, 5).

그분은 간절히 원하신다. 은혜로 죄인들을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어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어 ‘산 자’가 되게 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이 이 구원의 사랑, 곧 하나님의 언약(계명)을 이루시기 위하여 필요한 첫 번째 단계가 인간들이 자기가 구원이 필요한 본성적인 죄인임을 알게 하셔야 한다. 이 목표를 이루시기 위하여 먼저 땅의 법, 곧 모세의 법을 주셨다. 그들이 모세의 계명에 “탐내지 말지니라”를 본 순간 그들의 본성 자체가 죄의 본성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율법 중에 하나라도 지킬 수 없다면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씀을 죄인들이 보고 절망하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불완전한 모세의 율법을 주신 것이다. 죄인을 벌주시기 위하여 모세의 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죄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사망이라는 형벌 속에서 죽은 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형벌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죄의 세상에서는 죄인을 죄의 본성, 곧 탐심, 이기심, 욕심 등을 인간의 정상적인 성정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런 본성을 행사할 때 어떤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법으로 정한다. 그리고는 그 정해진 한계를 넘지 않으면 합법이고 넘으면 불법이라고 정죄하고 법에 정해진 형벌을 부과한다. 이런 것을 도덕법이라고 부른다. 성경의 법은 도덕법이 아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며 그 최상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은혜)이다.

이 십자가의 사랑이 바로 죄인들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이 최고의 법으로 완성된 것이다. 불완전한 모세의 계명이 십자가로 완성되어 하나님의 계명이 된다. 이런 이유로 모세의 계명(옛 언약)과 하나님의 계명(새 언약)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하지만, 그 수준과 차원은 더 높은 최고의 법이다. 사도 바울은, 옛 언약에는 흠이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새 언약이 주어진 것이라고 기록하였다(히8:6~7).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제정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만큼 더욱 훌륭한 직분을 얻으셨느니라(히8:6)
만일 그 첫 번째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것이 요구될 여지가 없었으리라(히8:7)

그렇다. 모세의 율법(옛 언약)은, 마치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건강검진을 해보게 하여 자기가 환자임을 알게 하고 의사를 찾게 하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으로는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율법 앞에 세워 자세히 영적 건강검진을 해주셔서 모든 사람이 영적인 환자, 죄인임을 깨닫게 하였다(롬3:20).

그 죄를 치유하여 없애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예수라는 의사에게로 나아오게 하시어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들이게 하시어 마침내 하나님의 숙원이신 죄인의 구원이 다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이다.

탐심, 욕심, 이기심 등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본성이며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다(롬3:10). 이런 본성은 후천적으로 학습하여 가지게 되는 성향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육의 몸(natural body)으로 타고나는 성향이다(고전15:44). 이런 육체적 본성을 겉으로,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고 산다고 해서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니며, 또 갓 태어나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아기가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죄는 율법을 범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런 죄인의 본성은 죄인의 육신을 구성하는 각 세포 속에 죄인의 선택에 따라 변질된 유전자로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죄인이 죽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인간이 죽어 그 존재 자체가 없어져야만 그 죄적 본성도 없어진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죄 없는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죄의 본성에 젖어 있는 이런 육신, 곧 죄의 몸(롬6:6), 또는 사망의 몸(롬7:24)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죽음을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셔야만 피조물인 인간의 죄가 사하여질 수가 있었고 하나님이 우리들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실 수 있게 되시고, 더 나아가 재림 때에 부활시키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의롭게(완전하게) 재 창조하실 것을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여 주신 것이 바로 ‘새 언약’인 것이다(롬4:25).

​모세의 율법이 구원의 약속임을 알지 못하고 명령으로 오해하면서 동시에 죄란 행위가 아니라 본성이라는 이 진실을 알지 못하면 결국 ‘행위주의’, ‘완전주의’, ‘율법주의’의 이단에 빠진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음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율법주의, 곧 행위주의로 향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현상과 같은 이단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결국 행위주의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갈라디아 현상’이 현재 개신교회 안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율법이 명령이 아니라 약속이며 죄가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정상적 본성이라는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이런 평신도들은 십자가의 은혜와 명령으로서의 율법 사이에서 여전히 헷갈리면서 우왕좌왕하며 영적혼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혼란을 틈타서 이단이 접근하는 것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 율법이 없으면 죄를 알지 못하여(롬7:7) 죄가 죄로 드러나지 않는다. 율법이 있어야 죄를 알 수 있고, 율법이 죄를 심히 죄 되게 한다.

산상보훈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율법은 모든 인간, 곧 죄인의 본성을 정죄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죄된 본성을 가진 죄인이 행동으로만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인이 될 수 없다(롬3:20). 그리고 정반대로 하늘의 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따르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최고의 법, 하늘의 법, 곧 사랑(은혜)을 행하시는 것이다.

모세의 법은 하늘의 법인 사랑이라는 상위(上位)의 법에 비교하면 하위(下位)의 법이기 때문이다. 하위(下位)법인 모세의 법도 사랑의 법에 반대하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하늘의 법(사랑)과 다르지 않다. 단순히 땅의 법, 곧 모세의 율법은 최고의 법인 하늘의 법보다 낮은 수준의 사랑의 법일 뿐이다. 그 이유는 400여 년 동안의 노예 생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도 완악하여졌기 때문에 완전한 최고의 하늘의 법의 수준을 낮추어서 수준이 낮은 완악한 백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본래(태초)에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모세의 법처럼 낮은 수준의 법은 없었다(마19:8). 최고의 하늘의 법만이 영원 전부터, 태초부터 존재하였다. 그러나 모세의 법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천사들이 제정하여 중재자(모세)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주신 것이다. 은혜와 진리를 주신 것처럼 직접적(요1:17)으로 주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마지막 때의 참 성도들이라는 말씀을 안식교 신도들이 읽으면서, 그 ‘하나님의 계명’을 ‘모세의 계명’으로 동일시하면서 아직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만 진정한 성도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도록 성령을 주셔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바로 모세의 계명 중의 넷째 계명이 약속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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