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9년 9월 다락방 전도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2001년 8월부터 워싱턴 임마누엘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2009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다락방을 떠난 목사이다.
내가 다락방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버지 이재덕 목사(제9대 전도총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나는 1993년 가을 다락방이 서울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류 목사 강의 테이프를 들었고, 신대원에 입학한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다락방에 참여하였다.
당시 다락방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총신, 고신 등 보수교단 출신이 많았다. 이는 류광수 다락방이 교회성장 비법을 강의하지 않고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하며 전도하자 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미나에 비해 류광수 다락방은 매우 투박했지만 매우 복음적이고 동기가 순수해 보였다. 당시 많은 목회자들이 류광수 다락방에 참여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이르는 성경적 전도방법론 때문이었다.
다락방은 고유한 전도방법이 있었다. 이는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 이르는 단계적 전도방법이었다. 류 목사는 사도행전의 전도는 평신도가 평일에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전도하다가 주일에 본교회로 모이는 것이라고 강의하였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고린도교회는 브리스가 부부의 집에서. 바울의 전도는 현장에서 불신자를 영접시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전하며 전도운동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도운동 역사이다. 류 목사는 이것을 언제나 강조하였다.
류 목사는 이것을 다락방, 팀사역, 미션홈, 전문사역, 지교회로 부르며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경적 전도방법이라고 강의했다. 당시 목회자들은 그 강의를 좋게 여겼고 그가 말하는 다락방에서 지교회까지의 전도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다락방에 참여했다.
분명 류 목사가 말한 다락방 전도방법론은 사도행전의 전도가 평신도의 집에서 가정교회로 시작되어 지역교회로 발전된 점을 비춰볼 때 타당해 보였고 그 설명도 매우 독창적이었다. 당시 많은 목회자들은 전도가 어려운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사도행전의 집을 다락방에서 미션홈과 지교회로 설명하는 류광수 전도방법론을 배우러 다락방에 참여했다.
2. 오직 그리스도를 말하는 다락방 메시지의 독특성 때문이었다.
류 목사의 성경적 전도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평일에 평신도의 집을 중심으로 불신자를 전도해서(다락방) 제자를 확립한다(미션홈). 그를 데리고 불신자 전도를 나가 다락방을 열고 사역자로 맡긴다(팀사역).
그들 중 전문기능인들은 팀으로 묶어 전문 분야를 전도하게 하고(전문사역) 그 모든 다락방과 미션홈과 전문교회를 지교회로 모은다(지교회). 그리고 주일에는 모두 본교회로 모여 온 성도와 함께 예배드린다(본교회). 류광수 다락방이 말하는 성경적 전도방법론은 이론적으로 볼 때 매우 신선하고 좋았다.
그러나 류광수 전도방법론의 독특성은 메시지에 있었다. 다락방 전도는 다락방 메시지로 하는 것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던 사영리식 전도 메시지와 달랐다. 거기에는 사탄이 강조되어 있었다(복음편지).
이는 한국의 불교문화권 불신자들이 이해하기에 쉬웠기에 전도하기 쉬웠다. 초창기 다락방에 한국교회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모여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확히 제시되는 전도방법론과 그것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든 복음편지 전도메시지 때문이다.
복음편지는 성경공부가 아니었다. 류 목사는 다락방에서 성경공부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락방은 현장에서 복음편지로 불신자와 성경공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영적 문제를 그리스도로 답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다락방이며, 다락방 메시지였다.
다락방의 오직 그리스도는 영적 문제와 연관된 용어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와 다른 의미이다. 자세히 보면 분명 다른 그리스도인데 류 목사가 워낙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 했기 때문에 다락방은 초대교회 순수 복음을 전하는 단체로 보였다. 이것은 다음에 다시 언급하겠다.
3. 원죄와 사탄, 영적 문제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깨닫는 착시현상 때문이었다.
류광수 다락방은 불신자를 전도해서 오늘의 세계복음화전도협회다락방를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끌어들여 성장한 것이다. 불신자를 전도한다는 다락방 메시지에 불신자들이 반응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반응했고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불신자를 전도할 새로운 방법론이 생겼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다락방 메시지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답답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평생을 목사의 사모로 살아오셨다. 평생을 교회 사택에 살며 교인들로부터 온갖 시집살이를 당했다. 1996년 예장합동 교단에서 다락방을 이단으로 결정했다. 그때 나와 동생은 신대원 2학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이 모여 다락방 문제를 논의하였다.
아버지는 두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말을 아끼고 있는데 어머니가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평생 사모로 있으며 율법에 눌려있었는데 다락방하며 복음 깨닫고 율법에서 자유해졌다. 나는 지금 불신자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이런 다락방이 이단이냐? 아니다. 우리는 계속 다락방을 하자.” 이것이 당시 다락방에 참여하던 목회자 사모의 반응이었다.
당시 많은 목회자와 사모들이 다락방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의 충격을 받았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 곧 죄를 교리로만 알고 내 문제에는 적용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을 사탄에게 전가함으로 생겨난 착시현상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무속인이 전도되고 또 사도행전같이 불신자들에게 오직 그리스도 복음이 증거되는 일에 목회자들이 충격을 받고, 그 메시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학적으로 간과했다. 목회자들은 이것을 신학 교리 메시지가 아닌 불신자 전도 메시지로 쉽게 생각한 것이다. 이는 큰 실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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