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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위선(僞善)을 직시하라
정종훈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7년 11월 17일 10시 36분 입력

 

 

▲정종훈 교수 
  본지 편집자문위원 
  연세대학교 기독교윤리학

  

나는 어느 교회에서 주일에만 협동목사로서 봉사한 경험이 있다. 협동목사라고 해 봐야 매주 2부 예배에서 사회를 보고, 매달 셋째 주일의 1부, 2부, 3부 예배에서 설교를 하는 정도였다. 하루는 스스로를 초신자라고 소개하는 청년 둘이 교회에 등록했다. 큰 키에 훤칠한 얼굴의 두 청년은 출석 인원이 40여 명인 청년부에서 대단한 주목을 받았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청년 회원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초신자 청년 둘은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교회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또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셋째 주일에 여느 때처럼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예배에 참석했던 두 청년 중 하나가 설교자인 나와 악수를 하면서 “목사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말의 억양이나 태도가 아무리 보아도 초신자 같지가 않았다. 마침 청년부 회장이던 아들이 그 친구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하룻밤을 같이 지냈음을 알게 된 나는, 아들에게 최근에 등록한 그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혹시 그들이 이단의 일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그들의 최소한의 인적사항을 받아 「현대종교」 측에 확인을 부탁했다. 「현대종교」 관계자는 오래지 않아 그들이 이단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청년부 지도목사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면서 그들을 주시하라고 일러주었고, 아들에게는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결국 청년부 지도목사는 그 둘을 불러서 확인된 내용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고, 그 직후부터 그들은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내가 연세대학교의 교목으로서 일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2002년 1학기 때의 일이니 벌써 10년이 더 지난 일이다. 학생회관 앞에서 한 단체가 부스를 마련하고 대학생 영어말하기대회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기독학생단체에 속한 학생이 나에게 와서는 낌새가 수상하다고 알렸다. 곧바로 교목실의 직원과 함께 학생회관 앞에 가 보니,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의 사람들이 현수막을 붙이고는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홍보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홍보물에는 우리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강당에서 대학생 영어말하기대회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기독교 대학인 연세대학교에서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집단이 그런 홍보물을 학생들에게 배부할 수 없으니 부스를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연세대학교에서 강당사용까지 허락받은 행사인데 왜 홍보할 수 없느냐며 항의를 했지만, 경비 아저씨까지 동반하여 재차 강력히 요구하니 그제야 “일단은 철수하지만 당신은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 행사 자체가 취소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목실장께 보고했고, 교목실장은 총장이 주관하는 실처장회의에서 강당사용을 취소하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당시 들은 바로는 그 단체의 주요 인사 가운데 우리 연세대학교의 유력한 동문이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 수억 원을 기부할 것을 약속하면서 강당사용만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그러나 연세대학교의 관계자들은 이단의 행사가 기독교 대학인 연세대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개최될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가 교목실장으로 일하던 몇 년 전 어느 일요일에 유사한 일이 또 발생했다.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여러 해 사역하던 학원선교 사역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단의 행사가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행사는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고, 대강당 사용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행사라 중간에 중지시킬 수가 없다고 했다. 주무부서인 총무처와 교목실의 주요 관계자들에게 이단의 행사가 대강당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전달했고, 월요일이 되어서야 상황의 자초지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단 집단은 단과대학의 학생 행사를 명분으로 해서 대강당 사용을 신청했고, 그 단과대학의 학생지도교수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지도교수 서명란에 서명을 했으며, 총무처는 단과대학의 행사려니 생각하고 대강당 사용을 허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이단 단체들은 연세대학교에서 행사하는 것을 매우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자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인 연세대학교에서 행사하는 것 자체가 이단 집단을 공신력이 있는 단체인 것처럼 둔갑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일 이후로 연세대학교 교목실에서는 종교 관련 행사는 물론이고, 정체가 모호한 행사에 대해서는 총무처의 문의를 받아 확인해 주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처럼 한국교회 주변의 이단들은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에도 있고,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대학가에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직장에서조차 활동하고 있다. 이단 집단들은 외적으로 특별한 표시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신도들은 자기 정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셈이다. 이들은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서 다양한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기독교윤리학자인 내가 생각하는 이단의 가장 큰 문제는 진정성이 없는 위선(僞善)에 있다. 이들의 위선적인 행태는 몇 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첫째,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친구처럼 접근하는 경우이다. 실연을 했다든지,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다든지,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다든지 하는 학생에게 가까이 접근해서는 온갖 관심을 주어 환심을 사고, 어느 정도의 인간관계가 형성이 되면 본색을 드러내어 이단의 집단으로 유인한다. 둘째, 사회봉사활동에 선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앞장서는 경우이다. 많은 이단 단체들은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적으로 돕는다거나 사회복지기관을 만들어 운영한다거나, 또는 정부기관과 연계한 사회복지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일반인들의 전방위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셋째, 이단 집단의 신도들이 친부모와 친형제 ·자매들보다 포섭 대상자의 직면한 문제에 대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이다. 이단에 미혹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나 형제 ·자매를 외면하고, 심지어 배우자나 자식조차 나몰라하면서 이단 집단의 신도들과 한통속이 되어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넷째,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을 이단의 행사에 참여시킴으로 자신들이 공신력이 있는 단체인 것처럼 처신하는 경우이다. 돈이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저명인사들을 자신들의 행사나 프로그램의 강사로 초청하고, 그 인사의 대외적인 지위나 권세를 활용해 자신들을 대단히 믿을만한 집단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다. 이때 사회 저명인사들 중에는 교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있다. 다섯째, 세계화의 물결 가운데서 이단 집단이 마치 세계적인 단체라도 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이다. 이단의 집단들은 공공의 이익이나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유엔(UN)이나 유엔 산하의 기구, 또는 세계적인 기구에 가입하고, 그럴듯하게 찍은 사진들로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다. 여섯째, 세상의 부나 권력에 대해서 무관심할 것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집착하는 경우이다. 시한부 종말과 관련한 이단 집단들은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인데 내일을 위한 준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재산을 팔아서 이단의 집단에 헌납하게 하고는 정작 교주와 측근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실정이다. 

 

이처럼 위선으로 가득한 이단 집단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단 신도들의 외형적인 행동 자체에 매료되어서 깊이 빠져들다가, 어느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단의 행위가 진심에서 비롯된 행위인지 아니면 가식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인지 분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너무나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이단의 가식적인 행위조차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며 받아들인다. 상대가 이단의 신도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상대의 친절과 관심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이단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의 달콤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단 집단은 처음에는 양처럼 온순하게 보이지만, 오래지 않아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단은 자기 집단의 정체나 이해관계에 손상을 당하게 되면 상대가 누가 되었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이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단의 위선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이단 집단이나 이단 신도들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에서 탁월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누군가를 교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베풀 것이 아니라, 사랑에 감동을 받아 기독교인이 되는 진정성 있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일반 기업조차 자식의 경영승계가 비상식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교회의 세습이 용인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논란이 되는 종교인의 납세의무를 기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또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마지막 심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사랑과 정의, 평화의 삶을 살아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할 때 이단의 집단들과 신도들은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설 자리를 잃을 것이고, 이들로 인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회복될 것이며, 비로소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