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공통점이 많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점 하나는 ‘인간만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릴라나 오랑우탄 등 영장류 유인원들이 인간사회와 유사한 단체생활과 가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종교생활을 한다고 밝혀진 것은 없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은 있지만 “절간 개 삼 년에 염불한다”라든지 “교회 개 삼 년에 기도한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산간 오지에서 소위 ‘원시적(原始的)’인 생활을 하는 종족들도 다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몇몇 종교와 유사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신앙의 대상도 다르기는 하지만 소위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종교는 가장 ‘인간적’인 활동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에 이렇게 중요한 영향을 주는 종교와의 관계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종교가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종교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종교심리학자들에게도 큰 고민을 안겨주는 주제는 “과연 종교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심리학자 에릭슨(E. Erikson)은 생애 첫 일 년을 “기본적 신뢰(信賴)대 불신(不信)”의 단계라고 불렀다. 그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신생아는 자신을 돌보아주는 사람(일반적으로는 부모, 특히 어머니)과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을 신뢰하는 능력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리고 주위에서 돌보아주는 사람들은 신생아가 이 능력을 잘 발달시킬 수 있도록 따뜻하고 일관성 있고 예측할 수 있는 태도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면 신생아는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고, 이후에는 이 바탕 위에서 다양한 발달 과제들을 수행해 간다.
불행하게도 신뢰를 발달시킬 수 있는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되면 신생아들은 ‘불신’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 불신의 바탕 위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 첫 번째 시기를 ‘기본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뜻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이 과제의 달성 여부에 의해 앞으로의 발달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신뢰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불신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생애 초기에 ‘기본적 신뢰’를 형성한 사람은 한 평생 동안 “희망(希望)”이라는 좋은 덕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이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애 초기 가장 나약하고 무능한 시기에 다른 사람과 세상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비록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힘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희망”의 탑을 쌓을 수 있다.
생애 초기에 이 믿음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항상 불안하다. 그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부모, 특히 어머니조차 믿을 수 없는 사람이 과연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그 무엇’인가를 믿지 않으면 평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항상 불행한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자신은 그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소위 “우상(偶像)”을 만들고, 그 우상을 “숭배”하고 집착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은 믿을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창조’하고, 그것을 믿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위안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상숭배’는 자신이 만든 종교를 믿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믿음과 종교와 우상숭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숭배대상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다. 진정한 종교의 숭배대상은 원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대상이다. 하지만 우상은 원래 힘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만든 존재다. 따라서 우상이 힘을 가지고 내게 위안을 주려면 그 힘을 내가 만들어주어야 한다. 따라서 우상은 의지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약하게 되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우상에 빠진 사람의 말로는 비참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힘을 우상에게 투여하고 마지막에는 생애 초기의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퇴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앙과 병든 신앙의 차이는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면서 하루하루를 희망차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의미’를 주는 종교인지의 여부와 그렇게 믿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건강한 종교를 건강하게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의 힘으로 현실을 더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계속 공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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