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가 통일교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군 생활은 더욱 파란만장해져 갔다. 종교 문제로 인한 압박과 혼란이 훈련의 고충보다 클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믿었던 군 교회의 포대 군종이 JMS 간부였고,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포함해 그 작은 대대에까지 이단에 속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의 군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래서 늘 궁금하다.
그래도 가을인데
수년 전 썼던 칼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봄인데, 벚꽃 등이 만개한 눈부신 날들이며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계절인데 이 짧은 한철, 세상 근사한 일들에 눈 돌리지 못하고 온종일 한국교회와 이단의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버거운 문제들을 안지 않아도 될 날, 그 날이 언제쯤 올까?’
윗글에 이어 한 번 더 끼적여봤다.
‘그래도 가을인데, 코스모스 산들산들 휘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조차 아름다운 가을의 끝 날까지 모두의 마음을 평안히 어루만져주는 계절인데 이 근사한 계절에 그것들에 제대로 눈 맞추지 못하고 교회들의 터져지는 사건, 사고들과 이단문제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의 모습만 눈에 가득 찬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데도 정작 바뀌어야 할 것들은 꿈쩍을 않는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버거운 문제들을 안지 않아도 될 날, 그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
그렇게 모두의 싸움이 되어
이단 문제는 성경을 잣대로 연구해야 함은 기본이며, 이후 정도에서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규정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해야 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적용, 내지는 인터콥(을 옹호하는 이들)의 문제처럼 ‘내가 보기에는 어떠한가?’로 받아들인다면 혼란은 급속도로 가중될 것이다. 이어 그러한 정보들을 곳곳마다 나누는 사역이 필요하며, 아울러 이단에 빠진 이들을 회복시키는 사역도 빠져서는 안 된다. 이처럼 여러 사역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힘을 발휘해야지만 비로소 이단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함부로 이단을 규정하고 함부로 이단을 해제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릇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작년 이맘때쯤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는 그러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정확한 정보가 아닌 거짓 정보를 배출하는 이단옹호언론들은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며, ‘그러카더라’식의 무책임한 정보와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는 이들 역시 교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상담사역 역시 피해자들을 회복시켜야 할 목적이 세속적으로 변질되어갈 때 이단들의 역공에 빌미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교회와 피해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 지역 이단대책을 맡았던 이의 ‘지역의 이단 문제를 풀어 가는데 목회자들이 가장 비협조적이어서 아쉬웠다’던 고백과 이단 피해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대신하여 용맹무쌍한(?) 싸움들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들을 때마다 상식선에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비단 정치, 경제의 문제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곤 한다. 가장 열심이어야 할 이들이 가장 무딘 사람일 수 있고, 기대하지 못했던 이들이 각종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피해자들 모임조차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다시 교회들에게 이단과의 싸움을, 관군의 역할들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여전히 영적직무유기중이며, 돌들이 일어나 열심히 소리 지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언젠간 더 많은 무리들이 모여 이 일에 동참하게 될 때, 그때의 봄에는 꽃그늘 아래로, 그때의 가을에는 낙엽 떨어지는 단풍나무 아래로 쉬러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간 이단 피해자들의 여러 모임에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냈으나 최근 피해자들의 모임이 내분 등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을 접하곤 망연자실했다. 함께 싸워도 부족할 판에 우리끼리의 다툼은(이게 무슨 밥그릇 싸움인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부디 싸워야 할 적들과의 싸움에만 매진할 수 있길 바란다.
적폐청산
적폐청산은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되어 사회와 경제 전반 곳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종교 차례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여전히 버겁고 또 녹록치 않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온갖 형태의 압박과 더불어 회유를 감당해야 할 때도 많은데 앞으로 종교 문제의 적폐들이 제대로 청산될 수 있길 바란다. 본지도 기사들로 말미암아 그간 많은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 보통의 압박은 소송으로 이어지고 (최근에도 소송들이 늘고 있으니 관심을 부탁드린다), 회유 같은 경우는 교계의 유명인사들을 통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당수가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인물들인데 그중 총회장을 지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내가 예전에 고 탁 소장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로부터 말문을 열곤 하나 그간 언급했던바, 본지는 선친을 언급하며 접근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믿지 않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일본 요한동경교회 사건이나 전병욱 목사 사건만 보더라도 교회가 피해자들에게 “이 사실(목사의 성추행 사건 등)이 알려지면 일본 선교나 전도의 문이 막히고, 교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회유 했던 일이 떠오른다. 이 같은 회유와 협박에도 물러서지 말아야 함은 당연하다. 또한 언론과 종교 등이 행해야 할 진리의 수호가 상식적으로 이뤄질 때 그것은 소명을 넘어 사명이 되고 사람을 사람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언론을 언론답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일본 동경요한교회, 그리고 코스타
일본 동경요한교회 사건은 지금껏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있다.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던 요한교회는 수년 전 담임 목회자의 성과 폭력 문제로 인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일본 코스타를 이끌어 오기도 했지만 일본 내 문제성 종교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컬트문제 기독교연락회’에 따르면 동경요한교회는 “그동안 대학 캠퍼스의 교내를 무단으로 출입, 교실을 사용하여 전도목적임을 숨기며 집요하게 권유하고 장시간 구속, 불투명한 회계 등 교회조직의 활동과 운영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군대식 훈련에 비유되는 철저한 ‘제자훈련’을 통해 멤버의 자기결정권을 현저하게 침해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결국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채 기억하기조차 싫은 사건이 터지고, 지역 사회와 일본 선교, 그리고 코스타까지 초토화 시켰더랬다.
그러한 부담을 안고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에 본지는 문제의 해결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 가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취재 직후엔 더 이상 피해자들이나 가해자들, 제3자조차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힘이 들었던 건 비단 본지만은 아니었으리라. 반대로 일본 쪽에서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말을 아꼈다. 이번 코스타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고 서운하기도 했으나 입장 바꾸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간 너무나 아팠었기에 그럴겨를이 없었으나 늘 감사해 하고 있었다”는 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그러했다.
현재 요한동경교회는 예전에 비해 신자들이 3분의 1로 줄어들긴 했으나 그 아픔들을 이겨내고 더욱 성숙한 공동체로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건강한 교회로 재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요한교회가 그간의 비판에 귀 기울이며 앞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며 건강한 공동체로 탈바꿈되기를 지켜보는 것이 이제 우리의 할 일이지 않나 싶다.
✽국제 코스타 역시 늘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임을 인식하며, 달려온 역사와 보이는 열매들에만 매달리지 말고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달려가야 할 길, 더욱 건강히 잘 달려가길 바란다. 아울러 잘못된 부분이 드러날 때는 분명한 사과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안팎으로의 건강한 비판들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번 호 기사를 통해 군 안 이단의 대책이 가시화될 수 있었으면 한다. 군대의 사회적 문제에 따른 관심은 적지 않으나 군대 안의 이단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 군의 종교 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과 더욱 구체적인 대처가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