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목사는 예배 시간에 기도를 드리고 토요일엔 안상홍이 쓴 책을 읽으며 보내라고 조언했다. 우리는 동의했고 멕시코 여행길에 올랐다. 그 여행이 우리가 함께 보낸 마지막 휴가가 될 거라곤 전혀 알지 못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교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그들은 포교에 매우 집중했다. 나는 ‘자매들’과 함께 새로운 신도들에게 ‘설교’하러 나간 것을 기억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다가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20대와 30대의 사람들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가게나 쇼핑몰 같은 붐비는 지역에 다녔다. 혼잡한 지역들이 가장 적절하고 대부분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냐”고 묻는 게 언짢았고 이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가거나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보안 요원들은 고객들로부터 불만을 듣고 우리에게 떠나라고 요청했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친구 중 한 명이 하나님의교회에서 콘스탄틴이 안식일을 폐지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 이메일은 몇 달 동안 나를 괴롭혔었고, 그 주제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첫 성경공부에서 안식일에 대해 배운 것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점에서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인터넷을 활용했다. 하나님의교회가 인터넷은 악의적이고 현대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것을 들은 후부터는 인터넷 사용을 피하고 있었다. 간단한 구글 검색으로 “콘스탄틴은 A.D. 321년에 안식일을 폐지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찾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콘스탄틴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콘스탄틴은 안식일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생각했던 하나님의교회의 교리가 하나씩 붕괴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구글 검색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교회가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웹 사이트를 발견했다. 하나님의교회 교리의 모순과 의심스러운 행동들, 그리고 전직 신도들의 상처 받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불안감이 높아졌다. 가장 충격적인 정보는 하나님의교회가 북한이 미국인 전쟁 포로들에게 사용했던 것 같은 정신 지배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로버트 J.Lifton의 사상 개혁 모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들의 신도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같은 전술을 사용한 것을 설명한 기사를 읽었을 때, 하나님의교회에서 경험한 것과 유사한 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퇴근 후에 남편과 컴퓨터로 찾아낸 정보를 의논했다. 남편이 삼일 작정 금식을 한지 둘째 날이었다. 금식의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님의교회에서 금식은 음식이나 물을 단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이와 유아를 포함한 모든 가족 일원들이 금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자매’ 한 명이 ‘아기 역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해 참여하지 않았다. 그날은 화요일 저녁이었고 우리는 3일째 예배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정보를 가지고 남편과 직면하자 그 또한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인정했고 왜 조직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이용하는지 의아해 했다. 남편은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했다. 남편이 몹시 허기졌기에 우린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저녁 예배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하나님의교회는 예배시간에 출석을 조사하기 때문에 곧 우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날 저녁에 왜 예배에 오지 않았는지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확인한 모든 질문에 답변할 테니 목사와 만나보라고 했다. 인터넷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전부 거짓말이라고 장담했다.
며칠 후 우리는 목사를 만나러 교회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집사, 여집사, 그리고 한 명의 남자 신도를 포함한 세 명의 신도들이 있었다. 이 모임은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림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의교회를 박해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모든 질문에 답변을 받을 것이라 확신했다.나는 왜 하나님의교회 신자들이 불신자 배우자와 갈라졌는지 물었다. 무엇보다 나를 전도했던 여성은 그녀의 남편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이유로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난 뒤였다. 나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교회 신자들과 그들의 불신자 배우자와 갈라지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 것을 언급했다. 목사님은 교회가 결혼한 부부들이 이혼 대신 관계를 유지하도록 장려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결별하거나 이혼한 신도들이 많은지 다시 한번 물었다. 목사님은 그들이 받은 박해 때문에 배우자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보통 불신자인 배우자가 남편이나 아내가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문제 삼았고 결국 신도들이 교회와 결혼 중에 선택하게 한다고 했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여 집사는 이런 비슷한 이유로 이혼을 했고 그녀의 남편은 간통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은 그녀가 내게 예전에 한번도 그녀의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남편과 갈라질 때 나와 의논했던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 십일조를 내는 것과 교회에 자주다니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안상홍이 『하나님의 신비와 생명물의 샘』(465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초막절 기간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복음을 전하고”라고 쓴 모순을 지적했다. 성경에(요7:14) 이르기를 예수는 초막절 절반이 지나기 전까지 성전 뜰 안에서 가르치지 않으셨다고 했다. 하나님의교회는 물이 세 가지 화학적 형태(고체, 기체, 액체)로 존재하듯 안상홍과 예수는 같다고 믿으며 하나님도(성부, 성자, 성령) 역시 그렇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안상홍과 예수가 같다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예수는 초막절 내내 날마다 가르친 것인가 아니면 명절 중간까지 기다렸던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기 때문에 둘 다일수가 없다. 집사는 예수가 매일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나는 요한복음 7장 처음에 예수가 명절 중간까지 기다리신 이유를 분명히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는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함을 알고 그의 형제들에게 먼저 명절에 올라가라고 한 후 나중에 비밀히 다니신다. 예수님은 이틀 반 동안 갈릴리에서 유다로 걸어야 하는 여정에서 비밀리에 혼자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을 리가 없다. 만약 예수님이 비밀
스럽게 혼자 가신 거라면, 분명 아무에게도 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목사가 모순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 책의 특별판은 왼쪽에는 한국어로, 오른쪽에는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 목사는 ‘중에’라는 단어를 가리키며 밑줄 치고 그것은 번역 오류라고 설명했다. 목사에 의하면 그가 밑줄 친 단어는 ‘everyday 날마다’ 대신 ‘middle 중간’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목사에 의하면 안상홍의 글과 성경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수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총회에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게 알리겠다고 장담했다. 나는 왜 애초에 설명을 안 해준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 “번역 오류” 라고 주장한 것의 진실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며칠 후에, 남편에게 한국인이 많이 사는 마을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미친 소리 같았지만 난 꼭 알아야만 했다. 길에 있는 아무런 한국 사람들에게 다가가 밑줄 친 단어 ‘중에’가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몇몇은 내가 전도하려는 것이라 생각해서 영어를 못하는 척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어의 뜻을 설명해줄 정도의 영어 실력이 없었다. 어떤 이들은 너무 미국화되어 있어서 한국어를 읽지 못했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 줄 수 없었다. 자정쯤 되었을 때 나는 좌절하고 있었고, 그때까지도 번역을 도와 줄 누군가를 찾지 못했다. 거의 포기했을 때쯤 한 식당에서 “나는 전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단어가 영어로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요”라고 먼저 말한 후 나와 대화할 의향이 있는 한 부부를 찾았다. 흔쾌히 책을 봐준 신사는 ‘중에’라는 단어는 ‘middle 중간’이 아닌 ‘during 중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음 줄에 나온 ‘everyday 날마다’라고 말하는 단어를 가리켰다. 그것은 번역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안상홍은 정말로 예수가 명절 동안 날마다 설교했다고 썼다.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목사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단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식당에서 한국인 남자가 말한 것을 남편에게 말해줬을 때, 그는 조금도 흔들리 지 않았다. 나는 왜 이것이 내 남편을 신경 쓰이게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안상홍의 저서와 성경 사이의 노골적인 모순을 무시했다. 구글 번역본의 입증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 단어가 사실 ‘중에’를 뜻한다고 말하는 선교사의 말을 믿었다. 나는 심지어 화장실 앞에 줄 서 있을 때 한국 자매들 중 한 명에게 밑줄 친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그녀 역시 그 단어가 ‘중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얼마 후에 결국 남편은 목사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의 행동을 눈감아 주었다. 남편에 따르면, 목사님은 나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계속해서 안상홍의 말과 성경 사이 의 모순을 무시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 목사가 정말로 “신”을 믿는다면 왜 안상홍
의 글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하는지 물었다. 그가 성경을 가리키면서도 똑같이 행동할까? 언제 예수나 그의 사도들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 참석했던 마지막 예배는 나를 위한 현실적인 점검이었다. 첫째로, 나에게 남편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중에 한 여집사가 “가끔은 결혼한 부부들이 함께 앉는다”는 말을 했지만 이런 상황은 내가 신도가 된 이후로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칠 무렵에, 목사는 인터넷에서 읽은 모순에 대한 질문은 공부를 마치지 않은 새신자만이 물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목사님에 의하면 기초 공부를 마친 후에 질문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는 그에게 어떠한 질문도 물어볼 수 있으며 전부 답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나? 왜 목사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라고 장려했으면서 며칠 뒤에는 신도들 앞에서 나를 ‘바보’라고 부르는 걸까? 날 모욕하려는 의도였을까? 남편은 나중에 내가 “다른 자매들을 타락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좌석 배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렇다면 여집사도 거짓말을
한 것인가? 그 시점에서 난 속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거짓말과 비밀에 질려버렸다. 나는 하나님의교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만약 남편이 계속 신도로 남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면서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