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요한 교수] 삼위일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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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종교 | 현요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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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9 11:01 입력
많은 사람들이 삼위일체 교리는 너무 난해하고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삼위일체 교리는 형이상학적 철학적 내용이지 성경적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철학이나 추상적인 사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사건들에 근거한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하나님 이해(神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과 삶에 매우 중요하다.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은 하나님이 세 위격(persons)이시면서 한 본체(substance)이시라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位)로 계시면서도, 한 본체(本體), 본질적 실체를 가지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이 세 분이신데 몸은 하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본래 몸(身體)을 가지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류이다. 그것은 ‘體’라는 한자어를 그대로 풀어서 ‘몸’이라고 잘못 이해한 데 기인하는 것 같다. ‘위’는 ‘위격位格’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고, ‘체’는 ‘본체(本體), substance’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이런 용어 자체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계시적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성경은 그것을 증언한다.
그러한 내용을 후대의 교회와 신학자들이 정리하고 이해하면서 삼위일체라는(the Trinity)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성경의 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을 믿지만, 삼신론이 아니다.
성경의 신앙은 삼위일체 신앙이다. 신약성경의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이 하나이시라는 구약성경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에베소서 4장 5-6절에 의하면,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라고 하였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세 하나님이나 그 이상 여러 신이 계신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동시에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계시적 사건들로 인하여, 성자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인정한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Logos)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태초부터 계시며 하나님의 창조에 함께하신 신성적 존재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주님의 부활 이후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자기 자신이 직접 보고 그 손과 옆구리에 나 있을 상처들을 만져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되자, 그는 전율하듯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골로새서 2장 9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신약성경의 신앙은 분명하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 신앙이다. 또한 신약성경의 신앙은 성령의 신성도 함께 믿는 신앙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하셨는데(요4:24),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도 신성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가리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하였는데(고전3:16), 성령과 하나님을 동일시하여 성령이 거하시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이신데, 창세기 1장 2절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도 창조에 참여하셨다고 한 것으로 보아, 성령도 역시 창조자요 신성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와같이 성경의 신앙은 성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도 믿는 신앙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성경은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고, 성부와 성령이 동일하며, 성자와 성령이 동일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삼위의 구분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성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구별되는 분이심을 분명히 증언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성자를 가리키는 ‘말씀’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고 하였다.
이 ‘함께(pros)’라는 헬라어 전치사는 대격(accusative) 명사와 함께 쓰여질 때, with, against, toward 등을 의미하므로 양자의 구별이 분명하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키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서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하였다.
독생자라는 말은 성육신 이전에 이미 영원 속에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유일하신 아들로 계셨다는 말인데, 아버지는 낳으신 (즉, 출생되지 않은, unbegotten) 분이요 아들은 태어나신 (begotten) 분이므로 양자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있다.
또한 마태복음 3장 17절에 의하면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의 음성이 있었다고 한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와 땅에서 그것을 듣는 이는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
또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 기도를 드리는데(마26:39), 기도하시는 성자와 기도를 들으시는 성부는 구별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마가복음 15장 34절에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고 돌아가셨는데, 이때 버리시는 이와 버림받는 이는 분명하게 구별될 수 밖에 없다.
한편, 성부와 성령도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하였는데, 이때 성령을 내보내시는 성부와 성부로부터 나오시는 (proceeds) 성령은 분명히 구별이 된다.
또한 로마서 8장 26절에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기도하시는 성령과 기도를 들으시는 성부 하나님은 구별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예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보내시는 성부 하나님과 보내심을 받는 성령은 구별될 수 밖에 없다. 다른 한편, 성자와 성령도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시리라고 하였는데, 보내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내심을 받는 성령은 구별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간단하게 정한다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말하는 기본적인 문법(규칙)은 다음과 같다.1)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시다. 2)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모두 동일한 신적 본질을 가지는 하나님이시며, 삼위는 동등하시다. 3) 그런데 성부와 성자, 성부와 성령, 성자와 성령 사이에 구별이 있다.
이 규칙들 중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수학적 논리로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삼위성 속에서 일체성을, 또한 일체성 속에서 삼위성을 말하는 계시적 신비이다.)1)번 규칙에 위배되는 것은 삼신론을 비롯한 온갖 다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2)번 규칙에 위배되는 것은 성자나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여러 이단들이 해당된다.
고대의 아리우스주의, 양자설, 반성령주의, 종속론,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 등이다. 3)번 규칙에 위배되는 것은 고대의 양태론, 군주신론을 비롯한 그와 유사한 이단들이다. 이 외에도 자신이 재림 예수 혹은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이단 교주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을 신격화하므로 1)번 규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을 성자나 성령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는 2)번 규칙에도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그들이 보혜사 성령일 수 없는 이유는 성령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데, 보이는 인간을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니 그 오류가 분명하다.1) 또한 그들이 재림 예수일 수없는 이유는 재림 예수는 초림 때처럼 일부의 사람들만 아는 방식으로 오시지 않고 세계 만민이 알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데 이때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렇게 오시는 “예수를 볼 것”이라고 하였으며(마24:30),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였다(마24:27).
그런데 자칭 재림 예수들 중에 그렇게 온 사람이 없다. 또한 그들이 재림 예수나 보혜사 성령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 자신이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잘못된 말씀과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 외에 그 어느 존재에 관하여서도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신성이 인정되는 성자와 성령이 계시지만 하나님은 철저히 하나의 본체를 가지신 한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각주 1) 신천지는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나오는 “다른 보혜사”가 이만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매우 명백한 오류이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라고 하였으니 “다른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며, 또한 “다른 보혜사”는 이어지는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이미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럼 왜 성령을 그냥 “보혜사”가 아니라, “다른 보혜사”라고 하는가? 요한일서 2장 1절에 예수 그스도 자신이 보혜사이시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에 ‘대언자’라고 했으나 헬라어는 모두 동일하게 ‘파라클레토스’라는 말로서 보혜사, 대언자, 변호자라는 뜻이다.
결코 무슨 새로운 비밀의 예언이나 비유풀이를 해 줄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단지 보혜사이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때문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이었고, 이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이미 성취된 일이다. -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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