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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화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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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 한성열 교수
2022.09.28 08:30 입력 | 2022.09.28 08:59 수정

우리 나라와 서양은 서로 문화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의 특징은 개인주의적이고, 반면에 우리 문화의 특징은 집단주의적이라고 칭한다.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일인칭 주어는 단수형인 ‘나(I)’인 반면, 집단주의적 문화에서의 일인칭 주어는 복수형인 ’우리(we)’다.

우리 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두 문화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 집에 놀러 갈래?”라고 이야기하지 “내 집에 놀러 갈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차이는 ‘우리 집사람’을 영어로 직역하면 듣고 있던 외국 사람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일부다처제도 아니고 일처다부제도 아닌데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이라고 하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문화에서는 ‘우리’라는 것이 그 만큼 자연스러운 문화다. 오히려 ‘나의 집’ 혹은 ‘나의 아내’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 인간을 이해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 다시 말해 나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는 바로 ‘self’, 즉 ‘자기(自己)’라는 개념이다. 서구의 self(자기)는 개인마다 독특하고, 다른 사람과 경계가 분명하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이고, 그 자체로 기능하는 실체(entity)라는 사회적 표상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인에게는 자신의 이성적 의식을 통해 이러한 성격의 self를 발견하고 발달시키고 통합된 형태로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과제가 된다.

개인마다 이러한 self에 따라 행위하고 살아가는 것이 곧 자기실현이 되고,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너’와 ‘나’가 분화(分化)가 되는 것이다. 이때 ‘너’는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이다. 서구에서는 언어 관습 상 하나님도 ‘너(you)’이다.

대조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영어의 ‘self’에 해당하는 ‘자기’라는 단어가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서구인과는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self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할지라고, 우리도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의 특징, 인간관계, 한국문화 또는 가치관 등을 설명하기 위해 self와 대응하는 우리의 개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우리말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내 마음 나도 몰라”, “그 사람과는 마음이 통한다” 등의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또한 우리말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한자 ‘心’이 많은 파생어를 만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심기일전(心機一轉)’, ‘안심(安心)’, ‘심성(心性)’, ‘심리(心理)’, ‘이심전심(以心傳心)’, ‘심사(心事)’ 등 많은 한자어가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이상(理想)적 관계는 “마음이 통하는” 관계이다. ‘너’ 와 ‘나’의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는 상호 독립적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 통해야 하므로 경계가 상호 침투적이며 개방적이어야 한다.

‘우리’라는 것은 복수형이므로 최소한 서로 분리된 둘 이상의 존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집단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우리’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집단 내에서 구성원 간에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한다. 일단 마음만 통하면 한국 사람에게는 내 것, 네 것이 없게 된다. 일단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제3의 그 무엇, 바로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관이며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마음이 통해서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된 상태를 정다운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 서로 통할 여지가 없는 사람을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 문화권에서 ‘정 없는 놈’, ‘정 떨어진다’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처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바람직한 인간 그리고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와 서양인 간에는 차이가 많이 있다. 이 차이는 한국인과 서양인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하나님은 인간과 분리되어 있지만 항상 옆에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인간에게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한국 문화의 바탕에서 한국인들이 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그것은 나와 ‘우리’의 관계를 맺어주시는 분이다. 즉, 나는 하나님과 동일체, 즉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나는 ‘동일체’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는 “우리는 하나”인 관계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 분으로써의 하나님이다.

물론 하나님은 한국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을 다 내포하고 계신 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문화 속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 지금까지 너무 서구적인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인에게 제일 적합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기독교의 외피를 쓰고 창궐하는 ‘이단(異端)’을 이해하고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 문화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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