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와 싸우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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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덕 소장 jaedug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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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9:51 입력 | 2019.02.15 10:04 수정
0. 헉헉 도와주세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종말론사무소의 윤 소장입니다. 이제 두 번째 글을 써야 하는데 저는 벌써 지난번 글에서 드릴 말씀을 다 드렸습니다. 이제 겨우 하나 써 놓았는데, 소재가 바닥났으니 큰일이네요.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달마다 글을 쓰는 일을 대체 왜 수락했는지 자책이 됩니다. “해피 뉴 이어 전에 원고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신 김정수 기자님의 얼굴이 아른거리는데, 저는 지금 막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큰일입니다)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조금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튜브는 영상을 올리면 금세 댓글이 달립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말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토대로 다음 영상을 계획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종교에 쓰는 글은,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메아리 하나 없는 캄캄한 방에서 소리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제 말이 들리시나요? 대답은 감사하지만 저는 여러분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서 대답해주실 분은 저의 이메일을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 이야기나 해주세요. 함께 이 지면을 채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jaeduggi@gmail.com)부족한 사람을 많은 분들이 도와주실 줄로 압니다.
이런 작은 연대로부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일단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겠습니다.
1. 진짜 적(敵)은 누구인가?
그럼 각설하고 지난주 말씀 드렸던 이야기를 해볼까요? 신천지인과 성경을 논하기 전에, 먼저 신천지인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글의 골자였지요. 물론 그들은 우리와의 인격적인 관계는 커녕 싸우려고만 할수도 있습니다.
편하게 말하기보다는 상처 주는 말만 내뱉을 수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에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더더욱 제가 말씀드린 원칙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1) 인격적 관계 2) 그들 스스로 말하게 하기 3) 그 다음 천천히성경이것은 저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사용하게 되면, 우리는 전선(戰線)이 바뀌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신천지인과 개신교인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인격적인 태도를 지키려는 자신과 또 그러길 원치 않는 자기 자신의 투쟁이 됩니다.
(성경은 전자를 ‘영’이라 부르고, 후자를 ‘육’이라 부릅니다) C.S.루이스의 말이 생각나네요.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독일의 전차부대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위해서는 도망만 다녀서는알 수 없고 직접 붙어봐야 알 수 있듯, 우리 안에 있는 악(惡)이 얼마나 강한 녀석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악을 직접 대면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천지인을 인격적으로 대하고자 할 때, 타인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길 원치 않는 강력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됩니다. 상처 주려는 타인에게 똑같이 상처주고 싶고, 화내는 상대에게 더 큰 화로 돌려주고 싶은 욕망이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가 진짜 적(敵)이 드러난 순간입니다. 그놈을 죽여야 합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로마를 무찌르면 구원이 찾아올 것이라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에게 어느 허름한 남자가 찾아왔고, 그 남자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경악할만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세상에 우리를 못살게 구는 저 로마를 사랑해야 한다니!’
당대 유대 지도자들은 로마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막았습니다. 그런데 타인을 사랑하라는 메시지에 귀를 막으려는 자기 자신이 곧 무찔러야 할 진짜 원수였다는 사실이 반전입니다. 타인과 싸울 것이 아니라, 사랑하길 원하지 않는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신천지인을 대하는 기독인의 대원칙입니다.
신천지인과의 대면은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미 가족이 신천지에 있어서 마음이 닳을 대로 닳아버린 가족들은 제 말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상담소에 가면, 일단 신천지에 가버린 가족에게 “잘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잘 해줘야지’라는 마음은 먹고 나면 그다음이 막막해집니다. 정말 잘해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과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때로는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이때 생기는 고민과 실수가 사랑의 위대한 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잘 해줘야지’는 말이 쉽지, 신을 이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길 때만이, 비로소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 위에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는 ‘기회’보다는 ‘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관계로 진입할수 있는 문. 그렇군요! 자기 자신을 이겨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니“좁은 문”이군요.
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얼마 전 어떤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분은 신천지를 탈퇴하신분인데, 탈퇴 이후에도 성경에 대한 고민이 깊어 마음이 어렵다고 토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저 좁은 문이 혹시 신천지는 아닌가요?”라고 불안해하며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해답은 가까운 곳에 있어요. 저 구절의 앞뒤를 살펴보면, “좁은 문”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11~13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기’가 우리의 좁은 문입니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그 사람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서 비로소 인격적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천지인에게 어떤 대접을 받길 원하시나요?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지요? 그럼 우리는 일단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말이 안 통한다고 비아냥거리거나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지요? 우리부터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은 쉽지 잘 되질 않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기.’ 이것이 신천지인을 대하는 핵심인데, 실천이 어렵습니다. 그럼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가차 없습니다.
히브리서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본문의 “죄와 싸운다”는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이 흘려야 할 피는 남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할 생각을 끊어 버리고, 자신이 피 흘리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분명 누군가를 닮았습니다. 그 누군가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사람 대신 자신이 피 흘리겠다는 사람을 향해 “희생”이라는 단어를 쓰겠지만, 저는 이 단어가 우리의 싸움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희생이라는 말에는 죽음은 들어있지만, 부활은 없습니다. 무언가를 위해서 버리는 것은 있지만, 얻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 반쪽짜리 단어는 우리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럼 이 단어는 어떨까요? “이김!”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하리라
여러분, 이기세요. 우리는 지는 것 같지만 이미 이겨있습니다. 우리의 이김은 드러날 일만 남아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와 싸워 이기세요! 사랑하기 싫은 자기 자신을 쓰러뜨리고, 사랑으로 돌파구를 뚫어나가세요!
많은 분이 저에게 “어떻게?”를 묻습니다만, 사랑에는 매뉴얼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용기 내어 실천하는 것은 정해진 방법이 없어요. 매뉴얼이 없으니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고, 내가 직접 걸으니그 길은 곧 나만의 길입니다.
우리가 우리답게 되는 길은, 우리가죄와 싸워 이기는 길, 곧 사랑하는 길뿐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피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모든 피를 흘리신 한 분을 “이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이겨야지요. 이것이 억울한 희생인가요? 아닙니다. ‘상황을 반전시킨사랑’입니다.
3. 신천지이든지 말든지
결론은 ‘신천지인을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도 별로 맘에 들지 않네요. 사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신천지에 속해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신천지 피해자분들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신천지인이든 말든 원래 우리 가족이고 이웃입니다!
그들은 로마서 13장 10절의 “이웃”의 범위에 포함되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들이 신천지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의 사랑을 그들이 비껴갈 수 없습니다. 만일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사랑으로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럼 이제 상황을 반전시킬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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