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구역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부터 신천지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신천지에서 소모임 전도가 생겼을 때 1등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만희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 잠깐이었지만 의전 활동도 했습니다.교사 활동과 여러 열매 맺는 활동에 전념하다보니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면서 신천지 활동을 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빠르게 구역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저는 구역원들이 주일에 결석하지 않도록 평일에 만나 관리하였고, 주일날 결석자가 생기면 늦게까지 남아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혼나기 싫어서 신앙을 포기한 자, 일명 ‘신포자’가 생기면 새벽 시간이라도 그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부모님께 조금씩 받던 생활비를 쪼개 맛있는 음식이나 선물을 사다 주며 주일에 결석하면 안 된다고, 한 번만 나와 달라고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윗 사명자가 신포자를 살려내라고 명령하면, 개인 일정을 다 빼고 그들에게 찾아갔습니다.당사자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고 신앙을 살린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시도해가며 춥든 덥든 오랜 시간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제가 있던 곳은 대학생들이 있던 조직이기 때문에 방학 중 모이는 “방중” 활동이 있었습니다. 대학부 방중은 오전 8시에 시작되어 오후 4~5시까지 이어졌습니다.이때 저는 구역장 중심으로 모여 구역 활동 및 말씀 공부시간 그리고 포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시간에는 전도활동으로 시내나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 쪽으로 노방전도를 나갔습니다. 여기서 노방 전도는 전단 활동이나 구역별 혹은 부서별로 20대 초반 대학생들을 위주로 포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20대 초반인 아이들도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맞지도 않는 정장을 입어가며 열매를 맺기 위해 포교활동을 했습니다. 포교활동이 끝나는 인원들은 전도 열매가 있다면 복음방 활동에 투입하거나 센터 관리 등을 시켰습니다.그렇게 오전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활동을 하게끔 하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친구들에게는 부모님이 용돈을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도록 시키고 방중활동에 나오게끔 하였습니다.또한 부서 내 사명자들은 정신훈련 기간을 가졌는데, 대학생 방학기간인 2개월 동안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성전에서 먹고 자며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모임 및 포교 프로그램 개발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정을 소화하게끔 교육하기도 하였습니다.1년 반이라는 구역장 활동을 끝내고 200명 조직의 심방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방팀장이라는 직급은 부장 바로 밑에 있는 직급으로, 부서 내 조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집으로 찾아가 신앙을 회유하는 등 대처합니다.저는 심방팀장을 하며 그 당시 제가 맡고 있던 조직의 200명이라는 인원들이 사회적으로든, 가정적으로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떻게 신천지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지만 신천지에 붙어있어야 한다고 세뇌했습니다.그리고 힘든 일이 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인원들의 힘든 상처를 사명자들끼리 공유하고 데이터베이스DB처럼 엑셀로 관리했으며, 인원별 A~D로 등급을 매겼습니다.C, D등급의 인원은 사랑방이란 것을 만들어서 해당 인원의 교사 인도자 잎사귀 센터에서 초대하여 그 친구와 했던 카톡, 텔레그램으로 주고받은 대화 캡처 사진 등을 전부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일이었습니다. 수고하고 짐진 것을 내려놓고 말씀으로 은혜 받아야 할 시간이었지만, 저는 결석률이 높아지진 않을까 불안해했습니다.누군가 결석을 하게 되면 필사적으로 다시 신천지에 데려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결석이 2명 이상인 부서의 부서장은 저녁 11시 모임에 들어가 한 시간가량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석 이유를 분석, 보고해야 했습니다.결석률이 높으면 안된다는 윗 사명자의 명령에 밤늦은 시간까지 결석한 인원에게 집착하고, 결석자들의 집에 찾아가는 등 숨 막히는 일들을 해왔습니다.이렇게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집 앞이나 아르바이트 장소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릴 때면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무나도 힘들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어떤 사명자들은 주일에 결석한 인원을 데리고 오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다가 경찰에 신고당한 적이 있다고 자랑처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는 일들은 무모하면 무모할수록 간증거리가 되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핍박이라고 생각하는 등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그중 정말 힘들었던 것은 말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일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인원수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또한 그런 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먹었던 욕들, 그리고 마음이 힘든 회원들을 살린다는 명목하에 매기는 등급과 뒷담들, 조금만 긴장하지 않고 흐트러지거나 잘못하면 그들만의 법을 기준 세워 했던 피드백들, 성향을 판단하면서 하는 수많은 말들로 인해 저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는 광대와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