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역사에서 1914년과 1975년은 빼놓기 어려운 연도다. 두 연도의 공통점은 성경의 연대기를 계산해 특정 시점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고, 그 시기를 전후해 현 체제의 종말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는 점이다.1914년,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1876년, C. T. 러셀은 예수가 언급한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는 해를 1914년으로 지목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1914년까지 약 40년 동안 성경연구생들은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출판물 수백만 부를 배포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한 시기를 기원전 607년으로 계산한다. 이때, 하나님의 왕권을 대표하는 지상 통치가 중단되고 이방인의 때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누가복음 21장과 다니엘 4장을 연결해 계산했다. 당시 성경연구생들은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이미 1874년에 시작됐고, 1914년에는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고 믿었다. 그 때가 되면 이방 국가들의 통치가 무너지며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히 확립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1914년 초에 발행된 『성경 연구생 월간지』 (제6권 1호)는 “만약 우리가 1914년 초에 발행된 『성경 연구생 월간지』 (제6권 1호)는 “만약 우리가 정확한 날짜와 연대기를 알고 있다면 이방인의 시대는 올해, 즉 1914년에 끝날 것입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러셀은 이에 대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지만, 사탄이 지배하는 현시대의 질서는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4년 인간 정부는 사라지지 않았고, 기대했던 종말도 오지 않았다. 이후 여호와의 증인은 연대 해석을 수정했다. 러셀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1874년에 시작됐다고 가르쳤지만, 현재는 1914년을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왕으로 통치를 시작한 해이자 ‘마지막 날’이 시작된 중요한 시점으로 가르친다.흥미로운 것은 1914년 관련 교리가 현재 여호와의 증인 지도 체계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1914년 그리스도의 왕권 통치가 시작된 뒤 1914년부터 1919년 초까지 예수와 하나님이 영적 성전을 검사하고 성경연구생들을 정련했다고 해석한다. 이어 1919년 예수가 그들 가운데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임명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은 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계본부에서 활동하는 통치체(중앙장로회)와 연결한다.
1975년, 아마겟돈이 온다이후 여호와의 증인은 1960년대 아담의 창조 시기를 기원전 4026년으로 계산하면서 아담 창조 이후 인간 역사 6000년이 끝나는 시점으로 1975년을 지목한다. 「파수대」 곳곳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1966년 10월 15일 「파수대」에는 1975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한 참석자는 이 새 책을 통해 아마겟돈이 실제로 매우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고, 이것은 이번 행사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68년 8월 15일 「파수대」에는 ‘당신은 왜 1975년을 기대하고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1975년이 6000년에 걸친 인류 역사의 끝을 알리는 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970년 5월 1일 「파수대」는 “성경의 연대기에 따르면 아담은 기원전 4026년 타락기에 창조되었는데, 이 연대기를 기준으로 하면 인류 역사 6000년이 끝나는 시점은 기원후 1975년이 되고,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가 시작되기까지는 1000년이 더 남게 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오든,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류 역사 6000년이 끝나기까지는 약 6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그만큼 여호와의 증인은 1975년을 강조했고, 신도들도 종말론적 기대감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4년 5월 「왕국 봉사」에는 신도들이 집과 재산을 팔고 파이오니아 봉사에 나서는 사례를 소개하며 파이오니아들이 역대급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신도들을 독려한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의 탈퇴자들에게서도 1975년을 앞두고 재산을 처분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많았다는 증언을 들어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결국 1975년에 아마겟돈은 오지 않았다. 이후 전도인 수 감소에 부분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1976년 7월 15일 「파수대」를 통해 1975년에 대한 기대 때문에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관점을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을 한다. 1975년 이후 신도들의 탈퇴가 이어졌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설명은 신도 자신의 이해가 잘못된 전제에 근거했을 수도 있다는 논리였다. 1980년 3월 15일 「파수대」에서는 1975년을 중심으로 기대가 높아지는 데 기여한 정보를 출판한 사람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1914년과 1975년이 완전히 같은 형태의 예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시기를 두고 조직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기대를 높였다. 첫 번째는 의미를 바꿨고, 두 번째는 부분적인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빼앗긴 신도들의 삶까지 수정할 수 없다는 점은 씻을 수 없는 과오라고 볼 수 있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