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에서 이단 또는 컬트와 관련해서 통일교,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신사도운동에 대해서도 기독교 관련 단체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본 특유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종교학자 이노우에 노부타카(井上順孝, 고쿠가쿠인대학) 교수는 일본의 신사도운동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하이퍼(Hyper) 종교’라는 용어를 주목했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전통적 윤리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무국적 종교운동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본 동북학원대학의 카와시마 켄지(川島堅二) 교수는 2022년 2월 「그리스도신문」을 통해 ‘문화재로 지정된 신사나 절의 건물에 기름칠하며 전도하는 사건’, ‘미래를 예언하는 카페’, ‘트럼프 지지자들의 컬트적 행동’ 등 언뜻 보기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비춰보면 ‘하이퍼 종교’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도 신사도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인물이나 단체가 이러한 사상과 함께 ‘영적 매핑(spiritual mapping)’을 중요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사탄’과 ‘영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으로, ‘영적’ 영역이 지리적 영역의 선을 따라 식별된다고 한다.
그 목적은 기독교의 양적 성장이다. 즉,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축복하셔서 선교가 용이한 지역과 ‘사탄’의 세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선교가 어려운 지역이 나뉘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선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복음주의의 유명한 전도자이자 부흥성경신학교, 칸사이(関西)성경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아리가 키이치(有賀喜一) 목사가 12월 22일, 29일 자 「크리스찬신문」에 광고 형태로 성명을 발표했고, ‘이단컬트110번’이 12월 31일 보도했다. 신사도운동과 사이비 단체 및 개인과 함께 사역한 것과 경력사칭 등 ‘큰 죄를 범한 것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백한다’는 것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여러분,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사역을 해온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미숙함으로 인해 하나님과 그리스도, 교회에 큰 죄를 범한 사실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1. 여러 선생님들께 “위험하니 관여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경계하는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이단적인 단체나 개인과 함께 사역한 것을 회개합니다. 또한 해당 사역을 모범적인 교회, 부흥의 징조라고 선전하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 악영향이 확산되지 않도록 발언자와 협의해 삭제할 것을 요청합니다.
2. 제 경력에 신학박사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이는 허위이며 학력 사칭입니다. 저의 허영심과 자기 과시욕에 이끌린 잘못을 깊이 뉘우칩니다. 또한 그것으로 보상을 받은 것은 형사처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며,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명예신학박사를 수여 받은 곳은 실체 없는 디플로마 밀(diploma mill, 학위남발학교)로 밝혀졌으므로 회개한 증거로 반납합니다. 풀러신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기재한 것은 잘못이며, ‘세계선교와 교회성장’이라는 연수를 받은 것은 맞습니다.
3. ‘아리가 키이치를 사랑하는 모임’과 저를 옹호하는 분들이 대립하고 일본 기독교 교회에 분열을 일으킨 것은 저의 죄 때문입니다. 깊이 회개합니다. 앞으로 저는 일본기독교회의 화해와 일치,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서 노력하겠습니다.
4. 지금까지 관여했던 단체와 개인에 대해서는 그 분야에 정통한 분들의가르침을 받아 잘못을 바로잡겠습니다. 그들이 의의 길로 돌아올 때까지 지원하고, 그 열매가 맺혔다는 것을 하나님과 교회가 인정할 때까지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할 것입니다.
5. 단립교회를 설립하려는 사람에게 다른 목사와 함께 기도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목사안수를 집행한 것을 회개합니다. 앞으로는 주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아리가 키이치를 사랑하는 모임’을 발족하신 선생님들, 초교파적인 선교 단체, 신학교 교수님들이 관여해 주시고 성경적, 신학적으로 권고해 주셔서 저는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계속해서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리가 키이치
이 광고에는 토미우라 요시유키 목사(富浦好之, 일본복음교회 고쿠분복음교회), 카마노 요시미 목사(鎌野善三, 일본예수교단 니시노미야성애교회), 카나자와 야스히로 목사(金沢泰裕, 일본예수교일본세계선교회 오사카 제자교회) 등의 연명과 ‘아리가 키이치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 일동 이름으로 아리가씨가 회개에 이르게 된 경위와 문제점도 기재됐다. 본문은 다음과 같다.
신사도운동 및 이단적인 사역은 성령에 의한 참된 하나님의 사역과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아리가 선생님께서도 판단을 잘못하셨지만, 그 잘못을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평생 주님을 따라 충성스럽게 일하시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아리가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을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 큰 문제를 이대로 간과하고 있었다면 일본 기독교와 아리가 선생님 자신은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신사도운동은 비성경적이며 참된 성령의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참여도, 교류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역이 일본에서 줄어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 또한 회개하고 의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리가 선생님은 학력 사칭에 대한 형사처벌을 받겠다고 고백까지 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에 누구도 형사 고소할 사람이 없고, 아리가 선생님에게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또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신학박사라고 사칭하는 것은 아리가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에게도 산재해 있으며 오늘날까지 일본에 존재하는 자기 과시욕과 명예욕에 의한 나쁜 관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쁜 관행이 일본에서 사라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번 아리가 선생님의 문제를 표면적으로만 보고 우리의 언행을 비난하고, 일본 기독교회가 분열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아리가 선생님이 죄를 인정하고 회개함으로써 갈등이 해소되어 함께 주님의 사역에 힘쓸 수 있기를 믿고 기도합니다.
앞으로 아리가 선생님이 잘못 가르친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의의 길로 돌아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에 인정받을 때까지 구원 활동을 계속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리가 선생님 자신도 진리의 길을 걸어가실 것을 믿고 주님께 맡깁니다. ‘아리가 기이치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의 사역을 여기서 마칩니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목사나 전도사가 부적절한 단체나 운동에 관여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사자가 회개하고 스스로의 책임을 공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배경에는 사태를 우려한 목사들이 잘못을 간과하지 않고 ‘아리가 키이치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인내심을 갖고 충고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비성경적 및 신사도운동 문제 강연회’에서 신사도운동과 사이비운동에 연루된 인물 및 단체와의 관계를 보고한 아리가 키이치 목사(출처: 「크리스찬신문」) |
이러한 교계 원로목사의 고백은 아리카 키이치 목사가 2024년 8월 30일, 오사카에 본부를 둔 초교파 네 개 단체 주최로 열린 ‘비성경적 및 신사도운동 문제 강연회’에서 신사도운동과 사이비운동에 연루된 인물 및 단체와의 관계를 보고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양한 교파의 목회자 110여 명이 참여한 강연회 모습(출처: 「크리스찬신문」) |
이 강연회에서 사카모토 효우부 목사(坂本兵部, 일본기독교단 아시노카고교회)는 ‘신사도운동의 누룩은 우리 목회자의 죄입니다 … 교회를 컬트로부터 지키기 위해’라는 내용으로 신사도운동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필자는 2024년 9월 15일 「크리스천신문」의 보도를 바탕으로 당일의 강연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연하는 사카모토 효우부 목사(출처: 「크리스찬신문」) |
‘성과’를 위해 ‘탁월한 지도자’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은 목회자나 신도나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에 불건전한 교회 사역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깊은 상처도 받았지만, 제 자신의 죄도 드러나는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주님께 회복의 은혜를 받으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각지에서 교회의 컬트화에 대한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오랫동안 친밀하게 교제하며 모범교회로 여겼던 한 교회에서 신사도운동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선배 목사님들과 함께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에게 열심히 회심을 촉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아 마음이 아팠던 적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관계 속에서 배우고 있는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목사에게 ‘일탈’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우리 목회자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께 부름을 받았을까요? ‘나 같은 사람이 십자가 구속을 받았다’는 감격이 소명의 전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은혜의 연장선상에서 ‘나 같은 자를 통해 단 한 사람의 회복을 위해서 주님께서 사역을 하도록 부르셨다’는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부르심 안에 머무는 것이 목사의 기쁨이고 만족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역을 진행하다 보면 서서히 다른 기쁨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설교에 대해 칭찬을 받거나, 교인 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실제보다 더 영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술에도 점차 능숙해집니다. 말하자면 주님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내 나라 건설’을 추진하는 근성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이 죄에서 자유로운 목사는 없습니다.
‘신사도운동’은 왜 파괴적인가?
‘신사도운동’은 조직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발동할 수 있는 악한 누룩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물든 단체를 나열하고 격리 선언을 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사도운동’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은 “‘비범한 지도자’가 가진 특별한 영적 지식과 영적 능력으로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 ‘비범한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그들을 롤모델로 삼으면 그 사역은 반드시 ‘확장’을 목표로 삼게 됩니다. 교회에는 이상한 상승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를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육체적 지배가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부흥을 위해 ‘탁월한 지도자’에 대한 순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믿음을 부정하고 ‘더 뛰어난 영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대교회 시대에 영지주의가 ‘십자가의 주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신앙고백을 왜곡하여 진리 위에 형성되는 성도의 교제를 깨뜨린 것과 같습니다. 그 누룩은 불건전한 분열이라는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사람들은 ‘신사도운동’에 열광하는가?
우리 목사들은 모두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그 은밀한 열등감을 사역의 ‘성과’로 메꾸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열매가 부족해서 힘들어하거나 자신의 연약함으로 고민할 때 ‘신사도운동’과 같은 것이 ‘돌파구’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그 누룩을 받아들이면 교회는 ‘부흥’이라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상태가 됩니다. 왜냐하면 신도들은 기본적으로 목사를 존경하고 설교를 진지하게 듣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막힌 상황을 빨리 타파하고 성공을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도들이 자신을 ‘탁월한 지도자’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목회자에게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 의존의 길이며,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길입니다.
‘신사도운동’적 경향이 지적되는 단체(그 지도자)의 특징
이단에 빠지면 나타나는 여러 특징 중 첫번째는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를 따라야 복을 받는다’는 주장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세례받을 때에 목사에 대한 절대 복종을 서약하게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배타성입니다. 다른 교회를 경멸하고 큰 소리로 비판하거나 다른 목사의 설교를 듣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외부에는 말하지 않는 메시지로 내부를 통솔하기도 합니다. 자신들만이 ‘진정한 영적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가 자신들과 같은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직접 계시의 강조, 지도자에 대한 권징의 부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랑의 교제로 보호받으며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동역자 안에서 이런 악한 누룩을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컬트화’를 지적받는 목회자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판에 대한 반격으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고하는 것’과 ‘판단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윗이 마음이 흔들리거나 타락했을 때, 아비가일과 나단은 목숨을 걸고 경고했습니다.
다윗도 그들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 목회자는 스스로를 평탄하고 투명한 ‘교제’ 안에 두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의 모습을 보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이단연루자, 이단옹호자, 반사회적 범죄자,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자가 되어버린 일부 기독교 목회자들의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묵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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