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조금만 더 머물다 갔으면 좋으련만2017년, 현대종교에 처음 발을 들인 그녀는 주부였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그러나 청년과도 같은 열정과 긍정적인 에너지 가득했던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그에 관한 선입견은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쉽지 않은 조건들과 그간의 경력이 제법 적지 않았음에도 수습으로, 객원기자로 본지의 사역을 시작했다. 나이 때문이었을까, 경력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고 살갑게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든든한 막내의 출현에 감사함이 컸더랬다.청년 때의 수련회에서 부족한 이의 강의를 통해 이단을 알게 된 것이, 그리고 늦게나마 이단 대처 사역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맞물려 넌지시 인생 2막의 삶에 도전했던 故 장인희 기자, 그러나 본지와 그녀와의 만남은 5년 만에 끝이 났다.짧은 시간이긴 했으나 칼럼을 통해서나마 함께 한 추억과 동역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달여 동안 노트북을 펴놓고는 단 한 줄을 쓰지 못했다. 먹먹함과 막막함 때문이었을까?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와 관련된 것들을 주섬주섬 살피다가 입사 당시 보내온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게 됐다.그때는 잘 몰랐으나 지금 와서 보니 어떤 추모의 글도 그 고백보다 나을 수 없지 싶어 그의 글을 조금이나마 담고자 한다.추모의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그리 적절해 보이진 않으나 앞으로 남은 이들의 열심한 삶을 통해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의 살가움과 간절함, 그리고 사랑과 열정 가득한 이야기를 조금 축약하긴 했으나 그렇게라도 독자 제현에게 전할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아울러 장 기자의 허락 없이 담게 됐으나 그가 이해해 줄 것이라 믿으며, 우선 그의 가정 이야기부터 전한다.“하나님께서 특별히 만나게 해 주신 부모님과 남동생, 그렇게 결혼 전까지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은 감사와 풍성함 그 자체였습니다.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이 가정에 제가 선물로 그들에게 안겨진 것은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축복이자 큰 빛과 같은 거룩함이었습니다.지금은 신부전증이라는 큰 병과 싸우고 계시지만 등산과 바둑을 즐기시며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이겨 내시려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고 있는 아버지와 그 곁에서 늘 조용하게 기도하시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계시는 어머니. 친언니처럼 때로는 속 깊은 친구처럼 저의 상담자가 되어 주시고 멘토가 되어 주신 어머니를 통하여 진정한 희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을 감사하며 봉사하고 있답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미 청소년 때부터 찾은 것 같고, 결국 본지 기자의 소명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교내 백일장에서 였습니다. ‘시’부분에서 우수상을 받은 계기로 인해 저의 진로를, 그리고 달란트를 알게 되어 감사히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도 하게 되었습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는 ‘소설’을 전공하여 교수님으로부터 필력이 참 좋다는 말을 들었으며, 편·입학을 하여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을 때는 ‘현대소설’을,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는 ‘시’를 전공하여 공부했습니다.이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아이들의 글짓기와 논술을 지도하는 학원에 취업해 강사 생활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유, 초등부 교사로 섬기면서 이렇게 아이들과 접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들과 공유하는 공감대가 커져 갔습니다.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아이들의 생각을 함께 토론하고 문장화를 이루어가는 그 과정과 시간이 즐거움이었으며,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발이라는 가슴 벅참을 높여 주기에도 충분했습니다.대학원에서는 국어국문학과와 교육학과의 행정 조교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수료 후에는 「낮은울타리」라는 문화사역단체에서 편집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대 청소년들의 문화와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단행본을 출판, 편집하면서 이 땅의 청소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문제이고, 또 기도해야 할 제목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수많은 목회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글을 단행본에 담는 작업을 하면서 이것은 단순한 일이 아닌 사역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고, 편집팀 팀장으로서 리더십 또한 갖게 하셨습니다.”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시절부터 선교단체에 들어간 일 등 여러 이유와 계기로 인해 「현대종교」의 사역을 기억하게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결국 본지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한참 전으로 돌아가 저는 중학교 때 친한 친구에게 전도되어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던 것이 저의 첫 신앙생활이었습니다. 간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았고, 친구들이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것을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첫인상으로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됐습니다.그리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위해 이리저리 찾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되신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뜻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등학생 시절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꼭 선교단체에 들어가 훈련을 받아야겠다는 소명도 갖게 됐고요.결국 1994년 대학 1학년 때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민족과 열방을 향한 기도와 전도에 대한 필요성. 순원과 순장 간의 유대감. 유는 유를 낳는다는 양육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됐고, 열심히 훈련을 받았습니다.아울러 문예 창작 전공의 달란트가 있었기에 예배시간에 사용되는 주보를 만들었으며, 대학교에 편입학했을 때는 천안지구 편집 순을 결성하여 매달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신문 발간이 아닌 오타 한 자를 바로 잡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제대로 된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열 번 이상 수정을 해야 하는 고통을 감당하기도 했으나 그만큼 열정이 있었고, 사역의 목표를 정확히 알고 나아갔습니다.시간이 흘러 대학 3학년 때 금식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탁지원 소장님의 이단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이단 강의는 처음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사람을 신으로 받들고 맹신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저의 신앙생활에 큰 사건이었습니다.수많은 사람이 옳지 않은 길로 가고 있고, 사람을 신으로 믿고 그들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에 울분을 안고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현대종교에서 함께 하길 기도하며 같이 사역을 감당하면 좋겠다는 사명감을 품게 하셔서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으나 지원하고 싶었습니다.하나님이 주신 귀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 땅에 이단이 사라지는 날까지 뜨거운 마음으로 사명 잘 감당하고자 합니다.”그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힘차게 왔으나 너무나도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나 그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고 탁명환 소장과 더불어 하나님의 곁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그곳에서는 부디 아프지 말고 남은 이들을 응원하며 기다려주길, 우리는 그가 못다 한 일들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그 사랑에 답하며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기도할 테다.✽ 가끔 멀리 떠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면 윤선애의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장 기자처럼 국문학을 전공한 박혜정이라는 이가 가사를 썼는데 어려웠던 시대에 절망과 무기력 속에서 힘겨웠으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이 땅을 떠나버리고 만 청년의 애타는 심정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장기자를 비롯해 안타깝게 이 땅을 떠난 이들이 우리의 연약한 머릿속에서 쉬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이지 싶다.다시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을 믿으며2년 전, 대한민국에 기습적이고 일방적인 수출규제를 단행했던 일본의 만행 아닌 만행을 최근 언론을 통해 상기케 됐다. 당시 핵심 수출 부품의 하나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격이 핵심이었는데 한국은 소재와 부품, 장비의 독립으로 맞섰다.그러나 결국 대일 수입이 ‘0’으로까지 내려간 것을 비롯해 일본 의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30년간 대다수 경제지표를 보면 일본이 기술경쟁력에서는 아직 우위에 있긴 하나 그 격차가 상당히 감소했고, 국가경쟁력 전체 순위에서는 ‘넘사벽’으로만 여겨졌던 일본을 추월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이렇듯 단호한 외교적 선택이 당장은 힘이 들 수도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국민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고 굳센 의지를 보이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생각한다. 늘 위기는 기회가 되고 있다.한국교회나 단체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당장은 어려움이 가득해도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것을 준비하고 계실 그가 각각의 버거움을 잘 알고 있으니 여전히 희망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2년 가까이 역병과 싸우고 있는 작금에 아직도 대면, 비대면 예배의 문제나 정부의 종교 탄압 프레임 등에만 신경 쓰며 볼멘소리를 하는 대신에 우리의 자정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내지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또 싸워야 하는지를 잘 판단해서 교회가 위기에 더욱 깊고 능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모두가 어려울 때, 그래도 교회는 ‘교회다움’을 포기하지 말고 아무런 조건 없이 국민과 이웃을 섬기는 것이 또 하나의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단 대처의 문제도 물론 마찬가지겠고. 나라와 교회, 그리고 국민 모두의 건투를 소망한다.✽ 모 교단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이라면 꽤 충격적이다. 이번 총회에서 모 이단의 해제가 있을 예정이고, 아울러 교계와 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어쩌면 이단보다 더 나쁜) 모 대형교회에 기대어 악어와 악어새 마냥, 그 곳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이단옹호자의 해제 등의 이야기들이다. 부디 여러 소문이 소문으로만 그치길 바라며, 그렇지 않다면 이단 문제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귀한 이들의 부재에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돌아가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삶 속으로 회귀 중이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