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흥종교 2세의 심리 이해하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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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적 거리 두기'
- 노지민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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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08:49 입력 | 2020.11.11 09:22 수정
“엄마! 엄마~~~!” 아이가 엄마를 부릅니다. 이때, 엄마는 아이의 목소리 톤, 빠르기, 주변 상황, 나이 등을 참고로 그 소리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뛰어가야 할 위급 상황인지, 아니면 “필요하면 네가 와서 얘기해”라고 기다려도 되는 상황인지를 판단합니다. ▲노지민 상담사 연세대학교 상담코칭학전공 박사과정 연세 상담코칭지원센터 |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이 장면은 사실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지 보여주는 단면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더 나아가서 아이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계 맺을지에도 영향을 주는 기본 관계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사람은 신기하게도 혼자서는 살 수 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생명체보다 유난히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에 관해 많은 발견을 했습니다. 르네 스피츠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청결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공급하면서 신체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데도 아이들이 사망하거나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누군가의 눈 맞춤, 신체접촉을 통한 정서적 돌봄이 필수적이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얼마나 쏟아야 적당할까요? 엄마는 아이가 부를 때마다 급하게 달려가야 하는 걸까요? 소아과 의사이자 아동 정신분석가였던 도널드 위니캇은 아이에게 완벽함이 아닌, ‘충분히 좋은Good Enough’ 환경으로 엄마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양육자가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거리를 조절하면서,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원할 때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지 않고, 계속해서 방임되거나, 또는 적절한 좌절을 경험할 수 없게 과한 돌봄이 제공되는 경우 아이들은 타고난 존재의 가치를 맘껏 발휘하며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신흥종교집단 2세들은 어떤 양육 환경에서 자랐을까요?
아마도 어린 시절 적절한 정서적 돌봄이 제공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부모의 과한 종교활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방치되고, 아직 어린 나이에 교주를 위해 예쁘게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훈련을 받느라,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발달 과정상 필요한 신체적, 정서적 양육이 결핍되어 아이들에게 세상은 따뜻하고 안전한 환경이 되기보다는, 심한 간섭과 규제만이 지속되는 침범적인 환경이었을 수 있습니다.
위니캇은 ‘충분히 좋은(Good Enough)’ 환경이 없는 경우, 세상에 맞추어서 살려는 가짜 자기가 발달한다고 말합니다. 가짜 자기로 사는 경우,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진짜 욕구나 감정을 잘 인식하고 표현하지 못한 채, 그들의 세상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허탈함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가짜 자기로 살다 보면,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고, 주변의 기준에 맞추며 의존적으로 자라게 되기가 쉽습니다. 2세들이 부모님과 종교 집단이 제시하는 요구사항들을 열심히 따라가면서도, 쉽게 탈퇴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세들은 어떤 가족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정신과 의사 보웬은 불안한 정서로 인해 가족원들이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융합)하거나, 아예 관계를 끊어(단절)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두 사람 사이에서는 긴장 해소를 위해 다른 대상을 끌어들이는 삼각관계(삼각화)를 맺기가 쉬운데, 삼각화의 대상은 사람뿐만 아니라, 술, 게임, 취미 생활, 반려견, 종교나 교회도 될 수가 있습니다. 종교 생활에 중독적으로 빠져있는 경우 종교와 삼각화 되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2세 아이들은 종교에 삼각화 되어있는 부모님에게 지나치게 융합되거나, 아예 정서적으로 단절하고 있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종교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 가짜 자기로 살아가는 모습을 융합 관계로 본다면, 그 관계를 견디지 못해 외적으로 이단에서 탈퇴한 경우에 단절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세들의 간증에서, 이단에서 탈퇴한 이유가 교주의 만행에 대한 실망이나, 거짓 교리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 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요? 남은 이야기들은 다음 달에 계속해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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