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지배자와 성폭력
‘그루밍(grooming)’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동물의 털 손질, 몸단장, 차림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루밍 성범죄라 함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여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어린이나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이루어지는데, 피해자들은 피해 당시에는 자신이 성범죄의 대상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교사와 학생, 종교지도자와 신도, 복지시설의 운영자와 아동 등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2)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는 이단 교주에 의하여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범죄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었다가 2018년 2월에 출소한 JMS 정명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2018년 이후 사회적 이슈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과 성락교회 김기동의 성범죄 사건이다. 이들 역시 그그루밍 성범죄자로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루밍 성범죄자들의 공통점은 피해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통의 관심사에 대하여 대화하면서 결핍을 채워 준다. 신뢰를 쌓아 가며 심리적으로 서서히 지배해 간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성적 접촉을 시도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성적 가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면서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피해자가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면 회유하거나 협박한다. 폭로를 막기 위해서이다.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성적으로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실제로는 가해자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성관계에 동의한 것처럼 보여 수사나 처벌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의 경우는 여신도 8명을 4년여간 수십 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6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피해자들이 이재록을 신처럼 받드는 상태에서 ‘성폭행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신도들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했다.
신뢰를 쌓아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피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른바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였다. 종교적 항거불능 상태란 피해자가 영적, 심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3)
거부할 수 없는 위계구조
이단 교주는 신적 존재로 여겨진다. 신도들은 신적 존재인 교주에 대하여 판단하거나 의심하는 것을 큰 죄로 생각하기에 교주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이러한 종교적 위계 구조는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나는 환경이 된다.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만민중앙교회에 다니며 이재록의 신적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세뇌되어졌다. 감히 반항하거나 거부할 수 없었다.
이재록을 의심하면 오히려 이것이 죄라고 생각했기에 오라고 하면 가야 했다. 이들 피해 여신도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한 종교지도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가장 아름다운 20대가 평생 후회스럽고, 지우고 싶은 시간이 된 것이다.
이단 그루밍 성범죄자는 피해자와 1:1로 만나는 상황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관계 수위를 높여가면서 결국 성적 착취를 하는 것이다. 이때 피해자는 이미 심리적으로 예속되어 있기에 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특히 교주는 ‘구원박탈’이라는 메시지를 주어 두려움에 떨게 한다.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회유나 격려보다 두려움을 주는 것이 대상자를 지배하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이렇듯, 이단이라는 폐쇄된 종교집단에서는 교주와 신도 간에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계질서가 구축되어 있다. 자칭 신적 존재라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교주와 신도 간에 ‘힘의 불균형’에 기인하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 구조 하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대부분 그루밍 성범죄이다. 많이 배운 엘리트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평소 교주로부터 영적·심리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면 누구든지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수 있다. 이단에 빠져 그루밍 성폭력 피해를 본 신도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여간해서 그 관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미 영적·심리적으로 굴복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가족과 정통교회뿐이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감과 수용적 자세만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다. 교회 내 평소 전문적인 목회상담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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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서울 우이감리교회 이단대책위원장, 서울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한국 카운슬링센터 전문상담사
2)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3) 이혜리, “신도 성폭행 이재록 목사, 그루밍 성범죄 인정” 경향신문(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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