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주님을 잘 따르면, 애굽에 내리셨던 모든 질병 중 하나도 그들에게 임하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15:26). 구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실제로 여러 사람들의 병을 기적적인 은혜를 베풀어 고쳐주시기도 하였다.물론 신체적 질병의 치유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질병의 치유 곧,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의 치유이다. 성경은 종종 죄악과 그로 인한 재난을 질병에 비유하고 그것을 씻고 바로잡는 것을 ‘고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사30:26, 렘3:22, 호6:1, 시41:4 등).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에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의 치유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병자들의 치유는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적 증거이기도 하였다.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한 고향 마을에서는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다”고 한다(마13:58). 이는 특히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쫓고 고쳐주시는 사역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예수님이 치유의 권능을 베푸심은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징표로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이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여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시고 파송하시는 말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면서 동시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마10:8).물론 예수님은 단지 병든 이들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고쳐주시기도 하셨다. 어떤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것이라든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일 등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고(막1:41),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는 그를 향한 긍휼하심과 사랑이 드러난다(요11:32-36). 로마군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것은 이방인이 보여준 놀라운 믿음 때문이었다(마8:5-13).모든 질병은 그 환자가 지은 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가? 성경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보면 그런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아닌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그 후에 성전에서 그를 만나셨을 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요5:14), 그의 질병이 그의 죄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또한 예수님은 침상째 들려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후 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다(막2:1-12, 눅5:17-26, 마9:1-8). 그러나 어떤 사람의 질병이나 그로 인한 장애가 죄악 때문이 아닌 경우도 있는 것 같다.제자들이 길을 갈 때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보고 그의 시각장애가 그의 죄 때문인지 그의 부모의 죄 때문인지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대답하셨다(요9:3). 제자들의 질문은 어떤 사람의 질병이나 신체장애가 당연히 누군가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전제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전제를 뛰어넘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모든 질병은 그 환자가 귀신에 들렸기 때문인가?베뢰아 이단 같은 곳에서는 모든 질병은 환자가 귀신 들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사람의 질병이 귀신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질병이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예수님은 귀신을 추방하심으로 어떤 환자를 고치시기도 하지만(막5:1-13, 막9:14-27), 단순히 안수를 하시거나(막6:5, 눅13:11-13), 만져 주시거나(막8:23-25) 그냥 말씀만 하심으로써(마8:3, 마8:13, 마9:6-7) 고치시기도 하셨다.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어떤 아버지가 데려온 귀신들린 아이의 경우는 예수께서 귀신을 추방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표현이 “말 못 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되어 있다(막9:25). 여기서 말 못 하고 못 듣는 증상은 그 아이가 아니라 귀신의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귀신을 추방하면 그 증상도 즉시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귀신들림이 질병의 원인인 경우에는 귀신을 추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이해를 확대하여 모든 질병이 귀신의 억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이다.베뢰아에서는 심지어 모든 질병이 병든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귀신의 것이므로 귀신만 추방하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즉시 논리적인 난점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귀신이 죽은 사람의 사후 존재라고 주장하는데,1) 그렇다면 귀신이 되었다는 그 죽은 사람의 질병은 또 어디서 온 것인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더구나 오늘날 현대 과학은 사람의 질병의 원인을 세균, 바이러스, 유전자의 문제, 음식과 생활습관, 환경의 오염, 스트레스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밝혀내고 있다. 그러므로 함부로 어떤 사람의 질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단정하고, 그에게서 귀신을 추방한답시고 쇠사슬로 묶어 감금하고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은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그 몸과 영혼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런 일들을 금해야 한다.하나님은 모든 질병을 기도와 안수로 고쳐주시는가? 어떤 사람들은 신유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이 모든 질병을 기도와 안수로 고치신다고 믿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도하고 안수함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기도 한다.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에게는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던 지병이라고 이해되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는데, 이것이 떠나가기를 세 번이나 간절히 간구하였으나 고쳐지지 않았다.바울은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다른 차원의 응답을 받았다(고후12:7-9). 또한 바울이 드로비모가 병이 들어서 병든 채로 밀레도에 남겨 두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딤후4:20).수많은 병자를 다 고쳐주신 것 같이 보이는 예수님도 실제로 모든 병자를 다 고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어느 날 이른 새벽부터 치유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님을 찾는다는 제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둔 채 다른 마을로 전도하러 가자고 하시는 말씀도 나온다(막1:35-38). 또한 베데스다 못가에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고쳐주신 사람은 38년간 병을 앓고 있던 단 한 사람 뿐이었다(요5:1-9).현대 의학과 의술을 사용함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인가? 신유 사역을 하는 어떤 사람들이나 이단들 중에는 자신들의 기도와 안수에 의존하지 않고 의술과 약을 사용하는 것을 믿음이 없다고 정죄하거나 금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의술이나 약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 현대 의학이 발견해서 사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흥미로운 점은 발전된 현대 의학을 사용하는 의사들도 자신들이 모든 것을 치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물이라든지 수술이라든지 여러 가지 치료 방법으로 환자들을 도울 수는 있지만, 질병에 대한 환자 자신의 저항력이나 회복력이 작동하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은 의사의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나 약품 그리고 환자의 회복력이나 저항력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올 수도 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한 예가 나오는데(딤전5:23), 이는 그 당시에 흔히 사용되던 의술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구약성경에서 동물의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를 먹지 말라고 한 계명을 근거로(레17:11~14) 수혈을 거부한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제사를 완성하신 후, 구약의 제의적 규정들은 이제 가치를 잃게 되었다(히10:1-10). 또한 피를 먹는 것과 수혈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동물의 고기가 아니라, 굳이 피를 먹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그 생명을 가로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요 이교적인 것이므로 금지되었다.그러나 수혈을 위해 헌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것은 타인을 위한 사랑의 행위이다. 또한 수혈은 헌혈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피를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학적인 행위이다.병을 고치는 신통력이 있는 물건이 있는가? 어떤 이단의 교주는 자신이 특별한 방식으로 처리한 물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서 그것을 마시거나 바르면 병이 낫는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신통력이 있는 물질은 없다. 만일 실제로 그런 물질이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병원이나 제약회사들은 벌써 모두 문을 닫았을 것이다.그런데 성경에도 그런 방식이 나오지 않는가? 이를테면, 예수님이 어떤 시각 장애인의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고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고 하여 눈이 나은 이야기가 나온다(요9:1-7). 그러나 성경 본문은 결코 진흙 자체에 신통력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요 능력이었다.또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게 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행19:11-12). 그러나 이 경우도 성경 본문은 손수건 자체에 어떤 주술적 힘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우리는 아마도 사도 바울에게 가서 직접 안수를 받고 싶어도 형편상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울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 그들을 고치신다는 일종의 징표로서, 임시로 손수건 같은 물건을 사용하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사람 마음대로 일반화하고 조종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다.완전한 치유는 종말에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구원, 치유, 건강, 위기로부터의 구출은 모두 부분적이다. 우리는 때때로 구원과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다. 온전하고 영원한 구원과 치유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이루어질 것이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구원은 그래서 더욱 귀중하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영생과 부활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질병이나 고난은 우리 인생의 결론이 아니다.심지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다가 죽어도 그것이 결론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질병이나 죽음은 삶의 절망적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인 영생 부활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1) 이 문제에 대하여는 나중에 마귀와 귀신들에 대한 글에서 다시 다룰 예정임.-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