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의 새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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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문위원 시론
- 현대종교 | 서영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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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4 08:30 입력 | 2022.03.24 08:48 수정
오래전부터 한국교회가 문제가 많고 정말 한계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의 비판에 직면한 한국교회는 실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현재 자구책을 내놓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상당히 많은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교회 안에 머물며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믿음과 헌신에만 골몰했다. 또한 과거에 한국교회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교인들의 신앙의 열심도 사라져, 현재는 교회생활에도 열심을 내지 않고 편안히 예수 믿는 교인들도 많아졌다.
나아가 적지 않은 성도들이 교회도 안 나오고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까지도 했다. 결국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에 기독교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 기독교가 원래 그러하였는가? 한국교회는 구한말 우리나라에 수용되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다. 당시 아직 덜 개화된 사회에 선진 문명과 기술, 교육, 의술을 전하며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이바지하였다. 선교 초기 한국의 기독교는 한국 민족의 악습과 폐단에 부딪혀야만 했다. 술과 담배, 아편에 빠져 있는 사람들, 주색잡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바른 생활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에 기독교는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사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미신타파, 축첩의 금지, 음주․흡연․아편의 금지, 혼인법이나 장례법의 개선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아니 하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조상숭배에 대해 기독교가 교리에 위배된다고 하여 금지시키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 기독교가 당시 한국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던 이유는 당시 타파해야 할 한국사회의 구습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한 면이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와 초기 교인들은 당시 한국 사회 속에서 선각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고, 개화와 구국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그 소임을 다하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교회에서의 여성운동과 사회참여, 구습 타파 및 신분 타파, 그리고 사회개혁운동과 시민운동의 전개 등으로 이어지는 초기 한국 기독교의 책임적인 활동은 개화 초기에 한국 사회를 바꾸고,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주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성경을 강조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한국인들에게 전해주었고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 역사에 영향을 주는 일들을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가 감당하였다.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 구원의 종교인 기독교에 희망을 걸었고 영생을 얻은 기독교인들의 삶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분명히 가르쳤고 우리 역사에서 그것이 나타났다.
기독교를 접하면서, 그리고 기독교 교육을 통해 참다운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민족의 수난기에 민족의 자존과 자주독립의 희망의 불씨를 지켜왔던 신앙인들과 교회가 존재했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고 새 희망을 갖게 되었고 이어 기독교계 학교들이 세워지고 상동파와 같은 민족의 위기에서 나라사랑을 실천하고 독립을 위해 행동으로 보이는 교회와 교인들이 늘어났다. 결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고 예수 믿고 교인이 되는 것이 신앙의 삶을 사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한국선교 초기의 선명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국교회의 새로운 변화가 시급하다. 한국교회의 새 출발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먼저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말씀을 듣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에 은혜받는 기본적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에 따라 우리의 신학 사상도 성경, 즉 말씀 중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른 교회가 설립되고 확산된다.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인,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인, 그리고 성령의 능력 체험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말씀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열심이 곧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의 교회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밀려오는 세속주의의 물결, 극단적 이기주의, 이단들의 공격이 교회를 허물었다기보다는 말씀의 부재로 인한 복음의 열정이 식어 하나님의 자녀의 역할을 못한 것이 문제이다.
둘째는 회개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성직자나 교인이 다 높아지려고 애썼다. 높은 자리에 가려 하고 남에게 군림하려고 하고, 각광받으려 하며 남보다 좀 더 나은 자리에 가려 하였다.
스스로 권위를 높이고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어리석음에 빠져버렸다. 기독교의 본질은 낮아짐에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성립 자체가 하나님의 인간 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과 자기 비움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미스바의 회개운동(삼상7:3-7)이 필요하다. 사명을 받은 한국 기독교가 주저앉아있는 모습을 통렬히 반성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회개운동이 필요하다. 예레미야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애2:18) 이것이 바로 새 출발이다.
셋째는 섬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기독교의 존재 이유나 존재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겸손과 봉사와 희생 그리고 사랑이다. 이것을 한국교회는 실천하면 된다. 로드니 스타크사회, 통계학자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발흥』에서 로마제국 시대에 어떻게 기독교가 성장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았는지를 통계적으로 연구하여 정리해 주었다. 로마시대 박해기에 큰 역병이 돌아 전 지역이 난리가 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라도 그 어떤 사람들도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다. 권력자나 부유한 사람들은 안전한 지역으로 빠져나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사는 곳에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염병이 창궐한 때를 지나 인구 통계를 봤더니 기독교 인구가 상대적으로 제일 증가하였고 그다음에는 유대교인, 그다음이 대다수의 이방인이었다. 왜 신흥종교인 기독교인의 숫자가 가장 증가했을까?
스타크 박사는 당시 기독교인은 그 수가 작았지만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할 것 없이 찾아가서 치료해주고 물과 먹을 것도 나눠주고 위로해주었다는 거다.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공포에 떨고 서로 경계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며 전염병에 속수무책 넘어져 갔다.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 남들에게 선대하고 용기를 준 기독교가 전염병도 덜 걸렸고, 전염병이 지나간 후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급속도로 로마제국이 기독교화되어 갔다.
지금 이 시대의 전염병 상황에서도 기독교는 분명히 역할이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낮은 데로 임하시는 모습을 따라 그분의 희생과 사랑의 본을 따라가야 한다. 주님의 자기희생의 모습을 닮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이웃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이타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다시 가져야 할 윤리와 도덕적 신뢰 회복이다. 교회가 세워진 처음의 모습과 마음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본연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 출발을 할 때이다. 기독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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