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 한복판에서 뒤집어졌다. 구조자 172명의 숫자는 사고 당일 이후로 더는 늘지 않았다. 첫째 날과 둘째 날 구조자 수는 같았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그랬다. 바뀐 것이 있다면 잘못 집계된 생존자 인원이었다. 수백 명의 실종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희생자의 수만 늘려갔다. 가족들은 애가 탔다. 나라의 젊음도 바다에 묻혔다. 안산시 단원고 2학년 325명이 배에 탔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75명. 무심했다. 5월 20일 기준, 희생자 수는 287명, 실종자는 17명이다. 대한민국이 슬퍼했다. 혹자는 한국사회가‘집단우울증’에 빠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슬픔의 크기만큼 사회는 분노했다. 누가, 무엇이, 무엇으로 숱한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알아내야 했다. 와중에‘세월호 구원파’논란이 일파만파 퍼졌다.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가 구원파 교주라는 이유였다. 순간, 모든 국민적 관심이 구원파로 쏠렸다. 이 기사는 현대종교 2014년 6월호의 일부입니다. 기사의 전문은 유료회원 가입 후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검색어 : 기독교복음침례회, 구원파, 유병언, 권신찬 관련기사[ 커버스토리 ] 유병언 구원파의 정체와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