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아득한 추억으로 떠나보내고, 또다시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초가 되면 목사이자 시인인 이현주의 ‘새해 아침의 비나리’라는 시가 떠오른다. 아는 분들이 많진 않을 것 같아 새해 첫 칼럼을 이 시로 대신하고자 하는데 아마 부족한 칼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감동은 덤이다.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해마다 주시는 새날이 온 땅에 밝았습니다.
올해에는 하늘을 기르게 해주십시오! 우리 몸속에 심어주신 하늘 싹 고이 길러
마침내 하늘만큼 자라나 사람이 곧 하늘임을 스스로 알게 해주시고
칼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칼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돈의 힘을 의지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
부끄러운 성공보다 오히려 떳떳한 실패를 거두게 하시고
유명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참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착한 일 하다가 지친 이들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을 가슴 깊이 파주시고
마음이 깨끗해서 슬픈 이들에게는 다함없이 흐르는 맑은 노래 들려주시고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기 전에 작은 촛불, 촛불 하나 밝히게 하시고
솟아오른 봉우리를 부러워하기 전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솟아오르게 하는 골짜기,
깊은 골짜기를 보게 하시고 밤하늘 별들을 우러르기 전에 총총한 별과 별 사이
가뭇없는 저 어둠, 어둠을 보게 하시고 아름다운 꽃 나비 벌 희롱하기 전에
뿌리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숨어 흐르는 수액을 보게 하시고
쓰러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길 떠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하시고
올해에는 하늘을 품게 해주십시오! 가슴마다 작은 가슴마다 우주만큼
큰 하늘을 품고 한 발 두 발 세 발 후회 없는 날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늘 싹 마침내 온누리 움텄습니다
그리운 이들
이제 정말이지, 한 점 관심 없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최근 정치적(종교적으로도) 혼란함이 가중되는 것을 보면서 한 이가 생각났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였으며, 특히 촌철살인의 비유로 서민들의 가려운 곳들을 시원하게 해줬던, 늘 즐거우면서도 단단한 정치를 했던 사람, 고 노회찬 전 의원이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 여태껏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깊다. 썩어빠진 정치를 볼 때마다 왜 이리 일찍 떠났는가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더욱 애달픈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당시 모 방송의 앵커였던 손석희씨의 목 메인 이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손씨는 “한 사람에 대해서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 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어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다”며,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논란이 됐던 것은 전 서울시장의 당시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했던,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라고 했던 발언이었다.
“거리낌 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 냈습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을 버린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 줄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이어 노회찬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1)
그의 죽음이 불경스러웠다는 이유로 본질이 가려지기도 했으나 적어도 수치스럽게 살지 않으려 했던 그의 부끄러움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과 동의가 크다. 정치다운 정치를 하는 이들의 부재와 믿는 이들조차 그러한 부끄러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아서이다.
정치인들은 차고 넘치는데 진짜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들이 거하는 곳에서는 날마다 공의와 법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지만, 오히려 공의와 법이 부재한 유일한 공간이 그곳이라 생각한다. 정치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과 당의 이권만을 생각하는 대다수 정치인이 아닐까.
교계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단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이단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으나 역으로 우리 편인 것 같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않은 이들로 인한 좌절과 절망이 더 많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앞서 정치하면 노 전 의원 같은 이들이 그리운 것처럼, 교계를 생각하면 교회의 교회다움과 건강함을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고 옥한흠 목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고 탁 소장과 막역한 사이로 더불어 귀한 동역을 이뤄갔으며, 탁 소장이 맘 편히 이 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섬겨준 이였다. 선친이 떠난 후에도 당시 27살 어린 청년에게 애달픈 마음으로 위로해 주고, 본지를 걱정해 줬었기에 사적인 영역에서 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깊다. 공적으로는 말해 무엇하랴?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로, 또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기에 그의 부재가 너무나도 공허하고 아프다. 특히나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라고 일침을 가했던, 우리 시대의 귀한 어른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였는지, 그때부터 함께하자는 말만 앞세우며 본지 주변만 기웃거린다든지, 앞, 뒤 재가며 동역하는 이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기도와 마음을 한데 모아주는 것이 진정한 교제와 동역인 것도 그를 통해 배운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과 교제할 때면 “내가 예전에 탁 소장과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대체로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진정한 동역자는 말과 오래된 친분만 앞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러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관련해서 깊게 생각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뭐가 그리 급해서 이리도 빨리들 떠나셨는지, 이번 겨울도 혹독할 것만 같다.
그래도 그들이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어갈 방법이 아예 없진 않을 듯하다. 떠난 선배들의 삶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 투영되고, 또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귀한 삶으로 이어진다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로부터 중간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구하는 것이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또 다른 방법이지 싶다.
* 32년 전의 일기장을 꺼내어 들었다. 그해 겨울, 선친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선친은 신앙의 동지였던 옥한흠, 문익환, 한경직, 이강오, 강신명 등과 이젠 좀 편히 쉬고 계시려나? 그리운 이들은 이리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났는데 못되고, 또 못난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다.
부디 모두가 귀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현대종교도 발간 600호와 홈페이지 구축, 그리고 자료 플랫폼의 확대 등 여러 사역과 열매들로 인해 행복하고 근사한 2026년이 될 것이라 믿는다.1)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 「JTBCnews」(2019.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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