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목사님, 저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습니다. 게임과 동영상에 푹빠져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미래가 걱정됩니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계속 걱정이 되고 두려움과 불안이 있지만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해가 됩니다. 중독이란 책을 추천하기 위해서 중독과 관련된 내용을 살피고 패턴을 연구하면서 깨닫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중독은 쾌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하고 나쁜 요소만 있다면 사람은 쉽게 중독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좋아 보이는 것이나 즐거움을 주기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중독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둘씩 점점 쾌락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그것이 삶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무책임해지는 것이 중독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특별히 중독의 패턴을 연구해보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결고리입니다. 무엇인가 계속해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도록 연결하는 고리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기 시작하면 강한 의지력 없이는 끊기가 힘듭니다. 요즘 유튜브나 페이스북 그리고 여러 신문 기사들에 이러한 연결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결국,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그것이 인생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점점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빠져듭니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공부도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통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중독입니다. 동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를 검색하면 나머지가 연결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연관성 있는 것들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점점 그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해서 시작하고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와 긴장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에 묶여서 결국은 매일 매일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중독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통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오히려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엔 자기 의지로 자유롭게 되기 힘든 것이 중독입니다.
중독에 빠진 청년과 사역자들을 돕기 위해 만나서 상담하고 중독 패턴을 연구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자신들을 항상 예외로 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심지어 중독을 돕는 사역자도 중독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마치 방사능이 유출된 지역에 가서 봉사하다가 방사능에 오염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실제로 중독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이 중독 사역을 하지 않는 사역자들보다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더 많이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형제가 게임과 영상에 푹 빠져 산다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기 분석입니다. 왜 그것에 빠지는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원인을 찾고 뿌리를 발견하면 자유롭게 되기 쉽습니다. 게임과 영상에 빠져들수록 현실에서는 괴리감을 경험할 것입니다. 게임과 영상이라는 가상현실에서만 살기 때문입니다.
게임과 영상에 몰두할수록 사회로부터 점점 스스로가 선택한 방식으로 격리되고 맙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때 경험되는 것은 기회 상실입니다. 실력을 준비할 기회가 사라지기에 미래를 열어가는 수많은 기회를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시간은 쉽게 지나갑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집중을 해도 아까운 시간임을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중독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게임과 영상을 끊는 방법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지만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건강한 선택과 집중을 해 주어야 합니다. 중독이란 일종의 몰입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것에 몰입하다 보면 심각한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의 상실을 경험합니다. 건강한 몰입이 성장과 성숙을 가져온다면 건강하지 못한 몰입은 파괴와 파멸을 가져옵니다.
이것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선택’과 ‘집중’입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선택하기를 반복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관계적으로 건강한 운동을 하십시오. 헬스로 비유하면 헬스를 하면서 자기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을 선택하고 반복해 줍니다.
더 나아가서 식단을 조절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몸에 건강한 식단을 중심으로 먹고 마십니다. 운동과 더불어 식단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 수면 시간까지도 조절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건강하게 연결하고 다듬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점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마음의 근육은 자존감을 키우고 자부심을 가지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가 힘들다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의 훈련을 위해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으면서 훈련을 하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마음 트레이너인 상담가나 신경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면,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중독으로 인하여 시간과 에너지 누수가 심각하기에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객관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중독은 방치하면 자기도 죽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합니다. 중독이란 건강하지 못한 것들이 일상 자체를 모두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부에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 신들이 자리합니다. 세상 신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상의 좋은 것들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세상 신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다면 그 또한 영적인 중독인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이 처음에는 좋아 보이지만 결국은 삶을 좀먹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준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절제와 근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게임이든 동영상이든 다양한 종류의 중독을 막으려면 철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한계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또 객관적인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접근을 해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는 성경과 성령 안에서 주어집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4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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