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목사님 저는 교회를 다니는데 교인들이 서로 특정 목회자를 추종하고 또 서로 끼리끼리 어울려서 너무 외롭습니다. 종종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너무 잘해 주어서 유혹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A
제가 제자들에게 종종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 삼겹줄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두세 사람 이상의 영적 친밀한 모임을 의미합니다.저도 영적 삼겹줄이 있습니다. 모이고 나누고 뒤돌아서면 비밀이 새어 나갈까를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힐링이 되는 모임, 학교 다닐 때부터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모임, 서로 건강하고 바른길을 걸어가고 옆길로 빠지지 않게 경계하고 경고해주는 모임입니다.안타깝게도 현대인에게는 영적 삼겹줄이 빈약합니다. 그래서 맛있는 삼겹살을 먹어도 혼자 먹습니다. 현대인은 혼밥족이 늘어갑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을 혼밥족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드물었던 고독사도 늘어갑니다. 아무도 죽은 줄 모르게 혼자 죽어가는 것을 말합니다.모든 가구 가운데 1인 가구가 우리나라는 가장 많기에 이런 현상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을 교제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힘든 인생길일지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가다 보면 힘들지 않게 갑니다. 여행을 할 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여행이 즐겁습니다.내가 외롭고 괴롭고 힘들 때 스스럼없이 기도 부탁을 할 영적 삼겹줄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괴롭고 아파서 낙심이 찾아올 때 찾아가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음속에 쌓인 어둠의 찌꺼기를 탈탈 털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관계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영적 삼겹줄이 있다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교회나 소그룹은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외로울 때 찾아가고 싶은 곳이어야 합니다. 괴로울 때 찾아가서 실컷 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찾아가서 쉼을 얻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익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아닙니다.교회는 동아리 같은 흥미 그룹이나 취미 그룹도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는 지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마치 회사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이단은 너무 잘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뇌의 과정일 뿐입니다. 영적 그루밍을 해서 길들여진 다음에는 철저하게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이 이단의 거짓된 사랑이기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는 교회>를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교회에는 신앙적 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많습니다.신령한 자는 영적인 사람으로 성숙한 자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를 말합니다. 신령할 수록 이상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를 고민하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합니다.예를 들면 고린도 교인들은 풍성한 여러 은사를 받았습니다. 체험과 영적 경험도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연약한 어린아이였습니다.“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3)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따라갑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생기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파벌이 생깁니다. 당을 짓습니다.“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4) 사람들은 틈만 나면 편을 가릅니다. 서로를 가릅니다. 끼리끼리만 어울리며 당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에 속한 일의 특징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의 문화가 강한 우리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파벌의 문제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명확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리를 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3:5)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이 부분입니다.교회의 참된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과 아볼로는 자신들을 사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원어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식탁에서 시중 들기”라는 뜻을 가진 말로 섬김을 의미합니다. 종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디아코노이”는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종 된 자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성경원어에서 다양한 직분자를 표현할 때 “디아코노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디아코니아, 디아코노이, 디아코노스> 이 부분이 상당히 병들어 있습니다. 이단은 이것이 없습니다.교주만 섬깁니다. 교주는 군림합니다. 또 교회라고 할지라도 부, 명예, 권력을 세습하고 특정한 사람을 섬기는 경우가 많아지면 그것은 위험신호입니다. 종의 자리에 있어야 할 사역자가 왕의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섬기는 일을 해야 할 사역자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디아코노이로 표현되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기는 자입니다. 사역자마다 자기가 감당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오직 하나님께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이단 교주처럼 교만해집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머무는 순간 영적 감각이 마비됩니다. 그때부터 육신적인 사람이 됩니다. 육신에 속하면 종종 이런 착각을 합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하신다” 모든 것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관자를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확신하는 바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 사역자는 축복의 통로일 뿐입니다. 사역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입니다.그럼 하나님의 사역자와 백성들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3:8) 우리는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고 각각 일한대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상 받을 자리에 머물고 있음이 은혜입니다. 쓰임 받음이 은혜입니다. 섬김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의 터는 특정한 힘 있는 사람이 아니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어야 합니다.교회는 끼리끼리 당을 지어서 사람을 따르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교회의 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예수님을 담아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저작권자 (C) 월간 현대종교(hdjongkyo.co.kr), 영리 목적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