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안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안수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안수란 무엇인가? 안수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기도해 주는 이가 받는 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다. 안수라는 것은 하나의 몸짓언어(body language)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기도해 주는 이가 받는 이와 (혹은 받는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안수를 하는 목적과 용도에 관하여 성경을 근거로 살펴보자.안수를 하는 목적과 용도1) 죄의 전가구약시대에 안수는 제사를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 제물이 그의 죄를 대신 속죄하게 하는 제례였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1:4)” 제물에 대한 안수는 번제, 화목제, 속죄제 등 속죄와 관련된 모든 제사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제례였다. 그렇게 제물에 안수하고 무엇을 하는 것인가?그것은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레16:21).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해 주시려고 제정해 주신 은혜의 제도였다.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인간이 짓는 모든 죄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벌을 받는다면 아마 살아남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경건하게 산다고 하여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를 짓는 자의 영혼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겔18:4, 롬6:23).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사람이 치러야 할 죗값을 제물이 대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제물을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 그 제물이 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되도록 해 주신 것이었다.신약 히브리서에 의하면 이런 모든 제사 제도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의 모형이요 예표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이렇게 외쳤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하나님은 그 주권적인 섭리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53:6).1) 예수 그리스도 이후, 제물에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는 폐지되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롭게 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을 때, 그 세례는 바로 그리스도와 우리의 동일시 혹은 연합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은 우리가 새생명으로 다시 살아남이 된다. 로마서 6장 1-11절의 말씀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구약시대에 죄고백의 안수를 통해 그 희생제물이 제사드리는 사람을 위한 제사가 되듯이, 이제 신약시대에 물세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바로 우리들을 위한 제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2) 치유의 도구안수의 또 다른 용도는 치유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안수와 함께 기도한 경우가 많았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많은 경우 병자에게 안수하심으로 고치셨다(막6:5, 눅4:40, 눅13:13).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예수께 병자를 데려와 안수해 주시기를 청하기도 하였다(마9:18, 막7:32).예수님이 어떤 나병 환자를 고치실 때 그의 몸에 손을 대심으로 고치시기도 하셨고(마8:3),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심으로 그 열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고(마8:15), 어떤 맹인의 눈에 안수하심으로 고쳐주시기도 하셨다(막8:23). 사도들과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병자에게 손을 대거나 안수함으로 병을 고친 일들이 많이 있다(행4:30, 행9:12, 행28:8 등).3) 임직안수의 또 다른 의미와 용도는 안수 받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직분을 맡겨 세우시는 것이다.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그를 이스라엘의 다음 지도자로 세우게 하셨다(민27:18-20). 사도들이 처음 집사를 임직할 때에도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세웠으며(행6:6),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처음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도 금식하고 기도하며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었다(행13:3). 목회서신에는 초기 교회가 어느 정도 제도적인 모습들을 갖추어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디모데전서 4장 14절은 디모데가 사역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음으로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4) 성령충만안수의 또 다른 용도는 안수 받는 자가 성령으로 충만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임직과도 관련된다. 직분을 받는 자가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성령으로 그를 충만케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게 되었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처럼 순종하는 지도자가 되었다(시34:9).아나니아라는 사람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울을 찾아가 그에게 안수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였고, 사울은 위대한 복음 사역자로 세워졌다(행9:17). 이 외에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한 일이라든지(행8:17-19),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한 일 등이 나온다(행19:6).2)안수는 안수하는 자가 받는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기도하는 매우 진지한 기도의 방법이므로 함부로 아무에게나 안수하지 말고, 교회의 질서를 위해, 정해진 규칙을 따라 꼭 필요한 경우를 분별하여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5장 22절은 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안찰은 없다간혹 ‘안찰(按擦)’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찰이 단순히 ‘손을 얹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때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전혀 성서적인 근거가 없다. 과거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단 한 구절에 ‘안찰’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사용된 ‘안찰’이라는 단어도 본래 때린다는 의미가 아니다.그 구절의 맥락은 북이스라엘 요아스 왕과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아스는 경건한 왕이 아니었지만, 그도 선지자 엘리사가 여러 번 기도와 영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지키고 구원하였음은 알고 있었다. 요아스는 여전히 북방의 아람 국의 위협 하에 있었는데, 이제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한탄하였다.3) 그래서 엘리사는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요아스왕을 돕기 위해 왕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게 하고 말하였다:“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왕하13:16, 개역한글판 번역). 여기에 ‘안찰’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안찰’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숨’)는 그냥 ‘대다’, ‘두다’라는 정도의 뜻이지 ‘때리다’라는 의미는 아니다.안찰(按擦)이라는 한자어도 손으로 어루만진다는 뜻이지 때린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이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개역개정판 번역에서는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라고 고쳐 놓았다. 안찰이랍시고 환자를 때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성령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안한 심리 때문에 물리적 힘을 사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혹은 그런 행동에 무슨 주술적 힘이 있다고 착각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심각한 잘못이다. 특히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안찰을 핑계로 마구 때리는 것은 그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이나 사도들 혹은 선지자들 중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안수와 성추행어떤 이상한 목사나 이단의 교주는 안수나 안찰을 빙자하여 성추행을 일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이다. 나중에 그런 일들이 밝혀지면 가해자는 흔히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변명한다.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지도자라는 우월적 지위와 정신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자기의 정욕을 따라 마음대로 통제하고 유린하는 범죄이다. 피해자는 그의 권위와 영향력에 압도되어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이다. 본래 안수라는 것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안수할 경우 어깨나 팔에 손을 얹고 기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 외에 성적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부분에 손을 얹는 것은 안수가 아니다. 병자 안수를 위해서도 굳이 환부에 안수한다고 고집할 필요가 없다. 환부가 성적 감정을 일으킬만한 부분이라면 더욱더 거기에 안수해서는 안 된다. 또한 밀실에서, 안수하는 자와 받는 자만이 독대하여 안수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안수 요금?어떤 사람들은 안수를 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특히 현대 의술로도 고치기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병자 안수의 경우에 두드러진다. 그런 환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이비 은사 사역자나 이단의 교주는 안수를 해 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거나 갈취하기도 한다.그러나 안수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더불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다.병을 고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거저 주신 것이므로, 우리도 그것을 거저 전달해 주어야 한다. 병자를 위해 안수하고 기도한 사람은 신유 은사의 배달부이지 그가 선물을 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병자가 감사해서 헌금을 드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안수해 준 사람 개인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며, 교회의 공적인 사역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__________1) 이사야 53장 4-8절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의 과정이 바로 그러한 대속의 과정임을 놀랄만큼 잘 보여준다.
2) 이 외에도 단순히 축복의 의미로 안수하는 일도 있었다.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를 비롯하여(창48:14-15), 자손을 축복할 때에 안수하였으며,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일이 있다(막10:16). 축복하는 대상이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일 경우에는 손을 들어 축복하기도 하였다(눅24:50).
3)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왕하13:14).-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