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와 정치와의 관련성은 일본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하지만 통일교의 발상지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인 부산장신대학교 탁지일 교수로부터 통일교의 현황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통일교의 기반은 미국, 일본, 한국
통일교 교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국인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사탄의 세력”이고, 한국은 일본에 의해 아픔을 겪은 피해자이며, 따라서 한국에 과오를 범한 일본은 한국에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일본 통일교 신도들의 헌금 및 영감상법 등으로 조성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왔으며, 많은 일본 통일교 여성 신도들이 결혼이민을 통해 한국으로 온 것도 이러한 교리와 무관하지 않다.실제로 통일교는 미국과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차별화된 역할분담을 해왔다. 일본은 한국을 위한 경제적 인적 지원을 하는 장소이고, 미국은 한국에 모여진 자금이 기업 활동을 위해 투자되고 이윤이 창출되는 곳이다. 일례로 통일교 계열인 트루월드그룹(True World Group)은 미국과 캐나다의 8300여 개 레스토랑에 초밥용 생선을 공급하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통일교 교세와 재정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적다. 다양한 경제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일반 기업들과는 달리 통일교 교리를 기반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신도들의 헌신도와 충성도가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종교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통일교와 정치권의 관련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김영삼 정권 시기를 전후하여 통일교와 정치권의 관련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1980년 중반까지 통일교는 승공운동을 통해 군사정권의 반공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정통성이 약한 군사정권은 적극적인 지지자가 필요했고, 기성종교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았던 통일교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후원자가 필요했다. 즉 군사정권과 통일교는 서로를 필요로 했다.하지만 199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의 선거캠프 인사의 통일교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이후 정당 및 정치인들은 통일교의 공개적인 지원을 꺼려하는 경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현재 통일교와 정치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수면 아래서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또한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문선명은 조문단을 평양에 파견해 애도한 일로 인해 한국사회의 반발을 샀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노출되는 일이 감소했지만, 2012년 문선명이 사망한 후에 시작된 후계 다툼으로 인해 사회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현재 통일교와 정치권의 공식적인 관계나 협력은 약하다. 게다가 한국 기독교는 통일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 인구의 3분의 1이 기독교인인 점을 고려할 때, 정당과 정치인들은 통일교와의 관련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하지만 미국과 일본에서는 통일교와 정치권과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아마도 통일교와의 관련성이 한국만큼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일 수 있다. 통일교는 반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일본에서는 자민당을 그리고 미국에서는 공화당을 공개적으로 지원해 왔다.야마가미는 과연 가해자인가한편 통일교 신도인 어머니로 인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피격 살해한 야마가미 데츠야와 같은 종교 2세들의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 결혼이민 온 통일교 일본 여성 신도들의 자녀들의 경우에도, 자신이 통일교 신도인 것을 노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가족을 포기할 수도 없다. 최근 통일교 2세들은 온라인상에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야마가미는 분명 이 사건의 가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면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통일교 신도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통일교를 탈퇴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도록 만들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원인제공과 관련해 결코 통일교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이 글은 “旧統一教会、発祥地の韓国でなぜ話題にならない?「日本と違う役割」”라는 제하의 일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인터뷰 기사(2022년 8월 26일)를 번역한 것이다.-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