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일본의 각 언론사는 뉴스 속보를 전했다. 옴진리교와 관련된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되어있던 교단의 전 대표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본명 마츠모토 치즈오 松本智津夫)를 비롯한 6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뉴스였다. 그리고 나머지 사형수 6명에 대해서는 지난 7월 26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옴진리교에 대한 강제 수사가 진행된 지 23여 년이 지나서야 13명의 사형수 전원에게 형이 집행된 것이다. 사형수의 이름과 사진은 다음과 같다.
옴진리교는 1989년의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과 1994년의 마쓰모토 사린 사건, 1995년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일으켰으며 총 29명이 숨지고 약 6500명이 피해를 입었다. 1995년 3월부터 시작된 강제 수사에서는 192명이 기소되었으며, 주모자로 지목된 마츠모토 교주 등 13명의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들이 일으킨 주요 범죄는 다음과 같다.
① 89년 2월: 전 신자 타구치(田口修二)씨 린치 살해 (살인)
② 89년 11월: 사카모토(坂本堤) 변호사일가 3인 살해 (살인)
③ 93년 1월 ~ 94년 12월: 사린 독가스 제조장 건설 (살인 예비)
④ 94년 1월: 전 신자 오치다(落田耕太郞)씨 살해 (살인, 사체유기)
⑤ 94년 5월: 타키모토(瀧本太郞) 변호사를 사린으로 습격 (살인미수)
⑥ 94년 6월 ~ 95년 3월: 자동소총 밀조 (무기 등 제조법 위반)
⑦ 94년 6월: 나가노(長野)현 마쓰모토(松本) 시내에서 사린 독가스를 발산하여 주민 7명을 살해 (살인, 살인미수)
⑧ 94년 7월: 전 신자 토미타 토시오(富田俊男)씨 살해 (살인, 사체유기)
⑨ 94년 12월: 미즈노(水野昇)씨를 맹독 VX로 습격 (살인미수)
⑩ 94년 12월: 하마구치(浜口忠仁)씨를 VX로 살해 (살인)
⑪ 95년 1월: 나가오카(永岡弘行)씨를 VX로 습격 (살인미수)
⑫ 95년 2월: 카리야(仮谷淸志)씨를 납치 감금하여 마취약 과다투여 등으로 사망하게 함 (체포 감금치사, 사체훼손)
⑬ 95년 3월: 도쿄 지하철 내에 사린 독가스를 발산하여 승객 및 역무원 12명을 살해 (살인, 살인미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역무원이었던 남편을 잃고 피해자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다카하시 시즈에씨는 이번의 사형 집행에 대해 “오늘 아침도 사형수에 대해서 생각하던 중 사형 집행의 뉴스를 접하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잇따른 사형 집행을 통해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었다하더라도 피해자인 유족에게는 사건이 전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사건이 잊혀지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어 아무것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의 3분의 1을 옴진리교에 빼앗겨 버린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합니다”라고 전했다.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인 사건으로 아들 가족을 잃은 사카모토 사치요씨는 “저도 아사하라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사형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에게는 ‘끝났어. 편히 쉬렴’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또한 옴진리교를 탈퇴하려는 신자를 도와오다, 광신자로부터 습격을 당한 타키모토 타로우(滝本太郎)변호사는 “마츠모토 전 사형수의 사형 집행은 당연하지만 다른 12명에 대한 사형은 의미가 없었다. 그 사건은 마츠모토 전사형수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다른 12명의 사형수는 마인드 컨트롤를 당해 행동한 것이었다. 12명은 살려서 그때와 지금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분석함으로써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와 옴진리교의 분파를 없애는데 도움이 될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옴진리교 사건은 과거의 일이라고 하여 잊을 수 있겠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계속 전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타키모토 변호사는 “법무부가 마츠모토 전 사형수 유골의 인도를 검토하고 있는 넷째 딸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지만, 마츠모토 전 사형수의 아내와 넷째 딸 이외의 다른 자식들이 유골의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사형당한 사람들, 특히 교주의 ‘유골의 행방’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마츠모토 전 사형수의 유골이 매장된 장소가 ‘성지’가 되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면 그 유골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다른 사형수들은 유골을 통해 순교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일본 법무성은 “사형 집행 후 사흘이 지난 9일 마츠모토 전 사형수가 도쿄도 내에서 화장되었다”고 전하며 “사형 집행 직전 담당자가 ‘시신을 누가 거두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해 넷째 딸이라고 답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대화에 대해서 신빙성 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넷째 딸과 변호사가 유해를 즉시 넘겨받을 경우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 있어 현재 마츠모토 전 사형수의 유골은 도쿄구치소에 보관 중이며, 앞으로 유골을 태평양의 불특정 지점에 뿌릴 계획이다.
현재 일본의 많은 언론들은 옴진리교에 대한 특집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현재의 많은 일본인들은 옴진리교 사건을 잊지 않고 있으며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은 옴진리교 사건 이후 태어난 세대이며 무엇이 일어났는지 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거나 단편적인 지식만 갖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후세에 전해야 하는가? 먼저 정확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옴진리교에 관한 모든 기록을 확실히 보존하고 빠른 시일 내에 공문서관에 이관하는 조치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고 컬트문제 그리고 컬트집단이 일으키는 테러에 대해 조사, 연구를 진행해 나아가야 한다.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점은 당시 왜 많은 젊은이들, 특히 많은 엘리트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반사회적인 범죄집단인 옴진리교에 입신하였는가? 그리고 그 분파들은 아직도 건재한가? 기성종교가 힘을 잃어가는 현실에서 국가의 기강을 흔들 만큼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그들의 ‘힘’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세뇌’, ‘마인드 컨트롤’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옴진리교가 매력적인 모임이었기에 모여들었다. 가정과 사회와 다른 종교단체로부터 소외당하고 그것들이 채워주지 못한 갈증에 대해 ‘알기 쉽게’, ‘친근하게’, ’구체적으로’, ‘영적으로’충족시켜 주었다고 많은 학자들은 전하고 있다. 끊임없는 컬트집단의 특이성과 사회적 악영향에 대한 연구와 조사, 예방활동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빼앗고 있는 옴진리교와 같은 다른 컬트집단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야 할지를 교훈으로 전해야 한다.